死월 애도(哀悼)

by 노크



토마스 스턴스 얼리엇이라는 시인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 되었다. 세월호가 좌초되던 8년 전 그때부터 4월은 이 땅의 부모들의 가슴이 갈가리 찢긴 아픔으로 각인된 달이 되었다. 아직도 팽목항에서는 자식 잃은 부모의 한 맺힌 곡소리가 파도로 일렁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4월은 봄으로 충만하다.


3월엔 아직 찬기가 서려 있다. 갓 깨어난 꽃봉오리들은 봄바람에 코끝이 시리다.

햇살이 도타와진 4월은 목련꽃이 뽀얀 속살을 드러내면서 봄의 서막을 알린다. 뒤이어 핀 진달래가

그 속눈썹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햇살의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어 터져 버린 벚꽃까지 만개하면

봄은 꽃의 교향악이다. 그저 찬란하다.

4월은 만물을 깨어나게 하고, 한 뼘 더 키가 자란 나무들이 춤추는 계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봄은 참으로 짧다. 만개한 벚꽃은 봄비가 한번 지나가면 그 꽃잎들이 산산이 흩어진다.

서녘 바람에도 꽃잎은 꽃비가 되어 속절없이 내린다. 그때가 꽃의 절정이라고 김훈 작가는 말했다.

우산 없이 꽃비를 맞고 서 있자니 어느 한날 들었던 노래가 떠오른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하며 시작하는 노래인데 제목이 뭐더라.

엄마가 내 나이 때 흥얼거리던 노래인데.’

앞 소절만 기억날 뿐 불러 본 적 없는 노래다. 노랫말이 궁금해서 핸드폰으로 찾아보았다.

가사는 3절까지였는데 그중에 3절이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이렇게 끝나는 노래는 봄날은 간다.


어느 선술집에서 젓가락을 두드리며 이 노래를 부르던 여인이 떠올랐다. 한 편의 영화처럼

내 가슴 속 깊이 훅 스며들었다. 이후 나는 설거지를 하면서도 이 노래를 불렀고, 책을 읽다가도 이 노래를

불렀다. 이른 아침 눈을 떠서도 가장 먼저 이 노래가 생각났고, 길을 걷다가도 이 노래를 불렀다.

‘열아홉 시절이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라는 부분만 반복해 흘러나왔다.

내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다. 처음으로 나이가 주는 압박감에 몇 날 며칠을 잠 못 잔적이 있다.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는다는 나이 마흔이 됐으면 어느 정도는 어른이 되어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마흔은 여전히 빈손이었고, 어른도 되어있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될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이후로도 사는 게 바빠 나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어느 날 내 나이가 쉰여덟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곧 귀가 순해진다는 나이 예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백세시대에 예순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지만 내게 예순이라는 나이는 넘어야 할 큰 산이다. 나이 예순은 성숙한 어른을 요구할 것인데

내 나이 마흔보다 부족한 예순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달려왔던가? 나이만 먹은 노인이 될 것인가?
성숙한 어른이 될 것인가?

하는 생각에 나도 앙가슴만 두들겨본다.

없는 살림에 자식만 여섯인 집에서 태어나 혼자 힘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그런 억척스러움이 나를 일복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경제적 안정과 먼 일을 하는 남편 때문에 가정 경제를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버거운 삶에 겨우 숨통이 트일만할 때쯤엔 암이라는 병마와 죽음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했다. 퇴원 이후에는 절대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난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


내게도 문학소녀라 했던 열아홉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새 황혼을 코앞에 두고 꿈같이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니 목 놓아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부르고 또 불러서 지난 세월의 아픔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몇 날 며칠 쉰여덟 개의 봄을 애도했다. 그리고 일기장을 펼쳐 나에게 긴 편지를 썼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힘든 시간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때때로 내 삶의 작은 쉼표를 찾아

끊임없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베키오 다리 위에서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피렌체를 바라봤다. 할슈탈트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웠고,

시내산에서는 장엄히 떠오르는 태양의 경이로움을 느껴보지 않았던가. 피라미드 앞에서, 클림트의 그림

앞에 서 있을 때의 감격은 또 어떻고. 지리산 둘레 길을 완주했으며, 하늘 푸르른 날엔 섬진강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달리기도 했으며, 이제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이 분주하다.


지나온 쉰여덟 해의 시간은 내 인생의 봄날이었다. 찰나의 봄날을 위해 꽃샘추위 같은 고단한 세월도 봄눈

속에 있었다. 그 봄날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삶의 훈장이 되어있다. 이제 그 봄날이 간다면 나의 봄날을

성대하게 보내도록 준비해야겠다. 그래야 이어올 여름을 더 잘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예순 이후에 난 소렌토의 여름처럼 싱그러울 것이다. 알프스 몽블랑의 어디쯤에선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있으리라.

“나 여기 살아있다”

일흔 이후에 맞이하는 나의 가을날엔 내려놓음을 연습하는 시간이 되리라. 그때쯤이면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리라. 내 삶에 겨울 같은 여든이 찾아온다 해도 삶의 온기를 잃지 않으며 지나온 계절의 풍성함으로 매일매일 한 줄의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리라.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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