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겔러리
두려움 반 용기 한 스푼
딸기잼을 바른 스콘 두 개와 사과 하나, 그리고 물 한 병.
한국에서 가져온 두꺼운 책 한 권을 가방에 넣었다.
오늘은 혼자 내셔널 갤러리에 가는 날이다.
딸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처럼 잔소리가 많다.
“정말 혼자 가도 돼? 핸드폰 잃어버리면 어떡해?”
나도 은근히 걱정이 되지만 큰소리로 말한다.
“내가 애니? 나도 잘해.”
골더스 그린 역에서 노던 라인을 타고 채링크로스에 내렸다.
영어는 여전히 읽히기만 하고 잘 들리지는 않지만,
내려야 할 역에서 무사히 내렸다.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 찍은 인증사진을 딸에게 보내니
그제야 안심한 듯 답장이 온다.
입구에서 짐 검사를 마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동안 이곳에 여러 번 왔지만 늘 시간에 쫓겼다.
오늘은 다르다.
폐장할 때까지, 배고프면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 먹으며
내 리듬대로 그림을 보기로 했다.
중세부터 인상주의까지
내셔널 갤러리는 그림으로 읽는 유럽 미술사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윌튼 두폭화〉,
그리고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부부 뒤편 볼록거울에 비친 또 다른 인물들,
1cm도 안 되는 프레임 속에 그려 넣은 예수의 수난 장면.
작은 화면 안에 담긴 집요한 신앙과 장인정신 앞에서
자꾸만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게 된다.
벨리니의 〈레오나르도 로레다노 총독 초상〉 앞에서는
사진보다 선명한 그의 시선에 오래 붙잡혔고,
홀바인의 〈대사들〉 앞에서는 고개를 기울여
해골 형상을 다시 확인했다.
화려함 속에 숨겨진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 났다.
루벤스의 〈삼손과 델릴라〉는
크기만큼이나 감정도 과했다.
잠든 삼손과 그를 바라보는 델릴라의 이중적인 얼굴,
사랑이었을까, 배신이었을까.
그리고 오늘 가장 오래 머문 그림,
들라로슈의 〈제인 그레이의 처형〉.
눈을 가린 채 참수용 도마를 더듬는
열일곱 살 소녀의 손.
개종을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한 제인을 향해
예순 살의 내가 묻는다.
‘무섭지 않았나요…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그림 앞으로
네 시간이 훌쩍 지났다.
1층 카페에서 스콘과 사과를 먹으며
런던에 오래 산 사람 흉내를 내본다.
혼자라서 가능한 느린 점심.
다시 그림 앞으로 돌아간다.
컨스터블의 〈건초 마차〉는
영국 사람들이 마음속 고향으로 품는 풍경이라고 한다.
변화 속에서 사라진 고향을
그림으로라도 붙잡아 둔 것이겠지.
터너의 그림 앞에서는
“하고자 하는 마음 앞에서 나이는 의미가 없구나”
다시 배운다.
고흐의 〈의자와 해바라기〉 앞에서는
그의 간절함이 내 질문으로 돌아온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원하며 살고 있는가.
모네의 〈수련이 핀 연못〉,
며칠 전 다녀온 지베르니의 풍경이 겹쳐진다.
호가스의 〈결혼을 계약하다〉 연작에서는
18세기 영국 사회의 민낯이 생생하다.
시대는 달라져도 인간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을 보며, 나를 보다
그림 앞에서 전율하고,
때로는 작가와 대화하고,
어느 순간에는 내가 그림 속 인물이 된다.
한 편의 그림은
드라마이고, 인생이고, 역사이며 신앙이다.
폐장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간다.
갤러리를 나와 트라팔가 광장에 섰다.
오늘도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한 편의 그림처럼 살아내고 있다.
나도,
내 인생에 남은 그림을
조금 더 정성껏 완성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