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이자 동유럽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도시다.
동유럽은 오래전 소련과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영향 아래 있었고,
1989~1991년 민주화 혁명 이후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전환했다.
반옐라치치 광장에 발을 딛자, 그동안 여행했던 유럽의 여느 도시들과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두브로브니크의 관광지스러움과도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이랄까?.
식사후 가장 먼저 아침 시장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이미 꽃들이 가득했고, 계단을 올라가니
빨간 파라솔 아래 파프리카, 양배추, 사과, 포도 등 과일과 야채들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돌라츠 시장의 꽃과 야채,과일가게
유럽을 여행하며 늘 느끼는 점은,
우리는 기념일에만 꽃을 사는 것에 비해 그들의 일상 속에는 늘 꽃이 가까이 있다는 점이다.
꽃을 산다는 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삶의 여유를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꽃을 샀다.
거리를 걸을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은은한 꽃의 향기가 한층 기분을 좋게 했다.
광장 앞에 있는 반 옐라치치 장군의 동상을 지나 성모승천 대성당으로 향했다.
세 번의 침략과 벼락에도 천년을 버텨온 성당이지만, 여전히 재건축 중이라 내부는 보지 못했다.
성당 앞 금빛 첨탑과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사진만 남기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햇살이 머무는 거리, 트칼치체바
조금 더 걸으니 트칼치체바 거리가 나타났다.
카페, 레스토랑, 펍이 빼곡한 거리엔 햇살을 즐기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위해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프니쿨라(언덕 열차) 쪽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프니쿨라는 공사 중이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니, 자그레브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조금 더 걸으니 실연 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으로 유명한 성마르크 성당이 나타났다.
타일로 만들어진 지붕은 레고 블록을 조립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왼쪽 문양은 중세 크로아티아·달마티아·슬로베니아를, 오른쪽 문양은 자그레브 시를 상징한다고 한다.
문 아래에는 예수, 요셉, 마리아, 12제자가 새겨져 있다고 하지만 가까이서 보지 못해 아쉬웠다.
성당 옆에는 국회의사당과 대통령궁이 자리해 있는데, 우리나라 지방 의회만큼 소박한 크기였다.
언덕 위 공원에서 자그레브 대성당과 오렌지색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배경 앞에서 꽃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꽃보다 누나’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배가 고파 다시 트칼치체바 거리로 향했고, 여행의 마지막을 기념하듯 푸짐하게 주문했다.
버섯구이, 등갈비, 치킨과 돼지고기 롤구이까지—어느 하나 남기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노을이 인사하는 도시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기대하지 않았던 크로아티아 여행은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두고두고 꺼내 볼 이야기 거리가됐다.
공항에 도착하자, 두브로브니크에서 처음 우리를 맞아주었던 그 진한 노을이 다시 보였다.
마치 “잘 가요” 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이곳의 노을빛은 유난히 더 짙고 선명한 것같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 도시라,
노을마저 더 아름답게 느껴진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