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의 완성

플리체비체

by 노크


스플리트를 떠나 네 시간을 달려 국립공원 플리체비체에 도착했다.

이미 해가 진 뒤라 주변은 온통 어두웠고, 겨우 숙소를 찾아 체크인했다.

국립공원 안에 있는 숙소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플리체비체는 워낙 인기 있는 관광지라 아침 일찍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오래전 TV에 소개된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된 듯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한국 아줌마 부대가 제일 눈에 띄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혹은 기념일을 맞은 부부가 여행사를 통해 온 듯했다.

나는 딸과 단둘이. 그 사실이 괜히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대부분의 나라를 딸 덕분에 자유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한 일이다.

딸과 엄마 사이는 애증의 관계라 한다.

누구보다 가깝지만 또 누구보다 짜증이 나는 관계. 애정이 있기에 그런 것이다.

우리가 처음 여행할 때도 그랬다.

딸은 나보다 내 친구들과 더 잘 통하는 것 같아 섭섭했고,

가끔은 엄마인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딸이 말했다.


“엄마 친구들은 손님 같은 이모들이고,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인 엄마지.”

그 한마디에 마음이 풀렸다. 둘이 여행을 다니는 지금,

딸은 내 손을 꼭 잡아 준다.

어린 시절 내가 딸을 챙겼던 것처럼 이제는 딸이 나를 챙긴다.

따뜻하고 고맙다.


호수 위에 쏟아진 가을빛, 내 마음도 물들다


플리체비체는 총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들이 모여 있는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이다.

석회암 침전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에메랄드빛으로 빛나고,

수십 개의 폭포가 여러 단계로 흘러내리는 풍경은 요정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맑고 아름답다.

나무다리로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또 다른 호수가 나타나고,

걷는 중에도 작은 폭포들이 계속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물 위에 놓인 길에서 호수와 폭포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호수 곳곳에는 송어들이 유유히 헤엄치다 가끔씩 물 밖으로 튀어 올라

보는 이의 마음을 놀라게 하곤 한다.

물색에 놀라고, 투명함에 놀라고, 유리처럼 맑은 물에 비친 단풍에 또 한 번 놀란다.

우리나라처럼 붉게 타오르지는 않지만 노랑과 주황이 어우러진 가을빛은

수채화 한 폭처럼 물과 어울려 아름다웠다.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 없어 그저 눈과 마음으로 깊이 담았다.

P2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P3으로 이동해 식사를 했다.

식당은 이곳 한 곳뿐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딸은 당당히 가방에서 육개장 사발면을 꺼냈다.

나는 물만 넣으면 되는 군용 비빔밥을 꺼냈다.

쌀쌀한 날씨와 긴 산행에 꼭 맞는 준비였다. 우리의 점심식사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다만 날씨가 생각보다 싸늘해 가벼운 옷차림으로는 종일 추웠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자주 안아주고 보듬어 주었다.

어느새 4시간이 걸리는 H코스를 마치고, 자그레브로 가는 차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쉬었다.


자연의 학교


플리체비체는 우리나라의 설악산 같은 국립공원이다.

설악산은 전 세계 사람들이 감탄할 만큼 산세가 빼어나고,

플리체비체는 험하지 않은 지형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소풍 오듯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매력이지만, 자연이 주는 신비와 경이로움은 두 곳 모두에서 깊게 느껴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선물로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 안에 심어지는 ‘신미감’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한다.

하늘의 구름 한 조각에서도,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 하나에서도,

우리를 스치는 바람에서도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플리체비체는 자연학교다.
토, 일 연재
이전 12화반짝이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