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필리아 !

테이트 브리튼

by 노크

영국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오후 늦게 온다는 비가 지하철에서 내리니 이미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은 딸과 함께 테이트 브리튼에 가는 날이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주요 미술관은 모두 가보겠다는, 작은 계획의 하루이기도 했다.

비는 갈수록 굵어져 옷과 가방이 모두 젖었다.

우산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런던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은 채 태연히 걷는다.

우리는 서둘러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트 브리튼은 1897년,

설탕 재벌이던 헨리 테이트 경이 자신의 소장 작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테이트 갤러리로 독립했다가, 2000년 대부분의 현대미술 작품이 테이트 모던으로 옮겨 가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현재는 16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영국 미술 작품을 폭넓게 소장하며

런던을 대표하는 갤러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미 내셔널 갤러리와 국립 초상화 미술관을 다녀온 터라 솔직히 몸은 조금 피곤했다.

그 그림이 그 그림 같고, 저 그림이 또 그 그림처럼 느껴질 만큼 감각도 무뎌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이곳에 온 이유는 분명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 《목수의 가게》,

그리고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샬럿의 처녀》 때문이다.

전원경 작가의 《런던 미술관 산책》에서 본 것을 꼭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그림들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보고 싶은 그림 몇 점만 보고 나올 수는 없었다.

결국 나의 그림 보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가장 오래 발길을 붙든 것은 역시 밀레이의 《오필리아》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오필리아를 그린 그림이다.

아버지의 죽음과 햄릿의 비정함 속에서 정신이 붕괴된 그녀는 강가에서 꽃을 꺾다가 물에 빠지고,

노래를 부르며 떠내려가다 서서히 가라앉아 죽는다.

이 이야기를 알고 그림을 바라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간 듯하다.

눈앞에서 오필리아가 천천히 물속으로 내려가는데도,
그녀는 슬퍼 보이지 않는다.
얼굴은 창백하지만 고요하고,
주변을 둘러싼 꽃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죽음의 비통함 대신 애수 어린 낭만과 신비로움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감독이 “컷” 하면 그녀가 언제든 일어설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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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울림을 준 그림이 워터하우스의 《샬럿의 처녀》였다.

이 작품 역시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테니슨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저주로 인해 성에 갇혀 태피스트리를 짜던 샬럿은 기사 랜슬럿을 보고 사랑에 빠지고,

결국 죽음을 향해 길을 떠난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떠나는

그녀의 얼굴은 허공을 향해 멍하게 열려 있다.

그 표정 앞에서 문득 생각했다.

젊은 시절 우리의 사랑도 저런 빛을 띠지 않았을까.

지금은 ‘평생 웬수’를 입에 달고 살지만,

한때는 당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며 고백하던 시절의 마음도 그만큼 절절하지 않았을까.

아름답지만 죽음을 앞둔 두 여인의 그림을 본 뒤,

마음이 가라앉아 있을 때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 시야에 들어왔다.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였다.

해 질 녘 정원에서 두 소녀가 종이 등에 불을 붙이는 장면.

자연광과 인공 조명이 어우러져 그림은 따듯하고 환했다.

꽃으로 가득 찬 정원과 아이들의 모습은 그림책의 한 장면처럼 서정적이다.

제목 역시 영국 동요에서 따왔다고 한다.


나중에서야 이 화가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았던 《마담 X》의 작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담 X》는 한때 노출이 과하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여성의 자의식과 독립성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사전트는 외형의 아름다움을 넘어,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는 존재의 강인함을 그려낸 화가였다.


그 외에도 윌리엄 블레이크의 《아담을 창조하는 엘로힘》,

터너의 《눈보라(알프스를 넘는 한니발의 군대)》,

로세티의 《베아트리체》를 차례로 감상했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사랑하는 아내 시달의 죽음을 신성한 부름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슬픔 대신 빛이 머물고,

붉은 비둘기가 떨어뜨린 양귀비는 죽음이 아닌 영혼의 부활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몇 점의 그림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또 다른 세계들이 연이어 열렸다.

화가들은 그림 하나에 역사와 문학을 입히고, 고독과 신념을 담아낸다.

그들이 남긴 수백 년의 붓질 위에서 우리는 지금도 배우고, 느끼고, 질문한다.

몇백 년을 말없이 자리를 지켜온 저 그림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나는 잠시 그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술관을 나설 즈음, 빗줄기는 가늘어져 이슬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그림으로 들뜬 마음 위에 미스트처럼 내려앉는 비가 좋았다.

그렇게 오늘의 태이트 브리튼은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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