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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01. 2022

싸우는 관계는 유니콘인가봉가?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해준과 수완의 관계에 대하여


“형 따라서 부산에 온 대가가 이거에요?”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해준은 자부심 있는 형사다. 그를 따르는 후배 형사 수완은 자신이 존경하는 해준과 함께 근무하기 위해 머나먼 부산까지 따라왔다.


수완은 해준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고 느낄 때마다 그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영화 전반부 서래에게 빠져 이성적인 수사를 하지 못하는 선배 해준에게 자꾸 투정을 부리고 딴지를 걸고 비판한다. 수완이 해준에게 그럴 수 있는 까닭은 그가 그만큼 상대를 신뢰하기에 가능했다.


나 역시 그런 관계를 추구하고 좋아한다. 상대에게 싸움을 거는 수고를 해서라도 상대가 나의 믿음을 배반하지 않도록 하는 관계, 상대방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 싸우는 관계. 그런데 그 관계의 수준이 굉장히 높은 것임을 체감하게 됐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친목모임이 있었고, 모임 장소로 가는 도중에 일행들에게 나는 모임의 주선자가 언뜻 들어서는 결례가 될 만한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할 당시에 대꾸 없이 잠자코 있던 A가 돌연, 그 말을 모임 도중 전달한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고자질, A 입장에서는 폭로?) A는 마치 농담처럼 나를 놀리듯 웃으면서 말했지만 내용은 전혀 웃기지 않았으니 나는 그 상황 속에서 그저 ‘썅년’이 되고 말았다. 그 말을 했던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억울했지만, 변명해봤자 구차해질 것 같아서 넘겼고, 자리를 파하고 나서 괴로운 마음과 A에 대한 원망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날 겪은 ‘내부총질’의 타격은, 단순히 ‘나 새됐어’라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A와 나의 관계가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A가 날 미워하나? 왜 엿먹이지? 하는 생각에 괘씸하고 분했는데, 그보다 본질은 우리의 얕은 관계 수준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신뢰하는 관계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신뢰하는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쌉소리를 할 때 <헤어질 결심>의 수완처럼 상대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듣는 즉시 비판을 하거나, 그 사람이 왜 개소리를 했을지 곰곰이 생각하거나 괴로워하다가, 결국 풀리지 않으면 각 잡고 “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요?” 문제를 제기하겠지.


하지만 이날의 일은 마치 싸구려 인간관계에서 흔히 생겨나는 헤프닝처럼 느껴졌다. ‘너 그거 알아? 걔가 이런 말 했어. 완전 쓰레기지?’ 사람들은 흔히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을 두고 앞이 아닌 뒤에서 이런 식으로 ‘담화’를 하곤 한다. 당사자는 억울하겠지만 뒷담화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사정’이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의 서사를 알아보려는 노력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이날 나의 발화는 A에 의해 그렇게 취급됐다. 상대가 아무리 쓰레기 같은 말을 하더라도, 신뢰하는 관계의 사람이라면 당장 싸움을 걸어 상대가 ‘그런 사람’이지 않게끔 책임질 의무가 있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관계의 지론이다. A와 그런 관계이길 바랐지만, 아직 멀었고, ‘싸우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 A와의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다음날 아침, A에게 숙취로 쓰린 속을 붙잡고 전화를 걸어 대체 왜 그랬냐고 따져 물었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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