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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26. 2022

우리들의 블루스, ‘노래방 블루스’

노래방, 가장 보통의 사람들의 문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제목에 걸맞게 노래방씬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극중 인물들이 노래방에서 제각기 자신만의 방식으로 리듬을 타며 즐기는 장면은 드라마의 제목 ‘우리들의 블루스’를 형상화한다. 중년이 된 인물들이 저마다 청승맞게, 또 익살스럽게 노래방 밀실 문화를 즐기는 모습은 지나간 젊은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 순간만큼은 예전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으로 느껴져 애잔함과 쓸쓸함을 유발한다.


 코로나 이전의 삭막한 우리네 문화는 극장 아니면 노래방- 밀실에서 이뤄지는 것이 전부였다. 드라마의 장면처럼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n차의 마지막은 항상 노래방이었던 시절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에는 그마저도 박탈당했기에, 드라마 속 떼창과 막춤사위가 난무하는 노래방 장면은 신선하고도 향수를 자극한다.


합법적 고성방가의 공간에서 마이크를 잡는 그 순간 만큼은 주인공이 되어 각자 저마다 자기만의 정서에 도취되던 것 역시 오글거리면서도 즐거운 추억이다. 사연 있는 여자처럼 벽을 붙들고 눈은 감은 채 심취해 헤어진 옛 연인에 대한 미련을 유감없이 내보이며(노래가 끝나고 혼잣말처럼 덧붙이는 단골멘트, “...00이가 좋아하던 노래야”) 각자의 세계관을 노래가사에 투영하며 메소드 창법을 선보이고, 동행한 사람과의 우정을 맹세하듯 노래에 감정이입하고 ‘이맴버 리맴버~’라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던 순간들이여. 노래방에서는 자신의 감정이 부풀려지고 과잉되는, 한편으로 그렇게 연극적인 순간을 즐기기도 하는 법이다.


코로나 시국은 여전하지만, 최근 기분 좋게 취한 뒤 정석 코스를 밟고자 오랜만에 노래방을 찾았다. 3년 만에 갔지만 부르는 노래는 3년 전과 똑같다는 점에서 생각했다. 어쩌면 노래방은 도달하고 싶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과거를 흉내내는 공간이 아닐까, 하고. 노래방은 시간도둑이기도 하다. 아직도 부르고 싶은 노래가 한참 남았는데 어느새 두시간이 너끈히 지나쳐 있었다. 남은 시간 1분이 뜨는 순간 “사장님 5분만 더요”라며 하마터면 시간연장을 구걸할 뻔했다.


흔히들 20대의 낭만은 해외여행,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접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여행 욕구가 없었다. 여행을 가려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하는데, 그러려면 5천원(당시 시급)을 벌기 위해 한 시간의 행복을 포기해야 했다.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지금을 희생하는 방식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보다는 사람들과 밤새도록 술 마시고 노는 것이 지상 낙원이라고 여겼고, 그 지상낙원은 노래방으로 구현되곤 했었지.ㅋㅋ 문화자본이 부족한 보통의 사람들에게 노래방은 새삼 소중한 공간임을 느낀다. 코로나 초기, 슈퍼전파자 중 한명의 동선이 공개되었을 때, 그의 행보에 비난보다 서글픔이 주된 반응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돌잔치 사진작가로 투잡을 뛰던 택시기사였으며, 생계노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아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방문한 곳이 코인노래방이었다. 그의 동선이 보여준 고단한 삶의 흔적에, 누구도 그를 쉽게 비난하지 못했었지.


코로나 이후, 우리는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방마저 끊고 방구석으로 파고들며 얼마나 더 외로워졌던가. 이제 다시 스멀스멀 기어나와 노래방에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구성지고 간절하게 노래를 부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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