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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15. 2022

<헤어질 결심>, 서로에게 ‘단일한’ 존재가 되는 순간

“당신은 꼿꼿해요”라는 사랑고백에 꽂힌 이유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살면서 이 문장에 깊이 공감한 시기가 있었다. 어떤 면에서 사람의 인생은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니까.


영화 <헤어질 결심>은 자신 본연의 모습을 알아주는 사람을, 불행히도, 엇갈릴 수밖에 없는 시공간에서 조우한 두 남녀의 이야기이다. 단순한 치정 멜로로 치부하기에는 부족한, 관계란 무엇이며 사랑은 어떤 조건에서 형성되는가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자리 잡고 있다.


해준은 ‘들어주는’ 사람이다. 후배 형사 수완이 “피의자 말을 지나치게 들어준다” 불평할 정도로, 편견과 감정에 휩쓸려 판단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해준은 의심스러운 피의자의 말이라도 ‘듣기 위해’ 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는다. 그런 해준이기에 용의자 서래를 대하는 태도 역시 이성적인 호감을 차치하고서라도 품격을 갖춘다. 서래는 자신을 “바라보고, 냄새를 맡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해준의 존중하는 태도 덕분에 취조실에서도 꼿꼿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서래는 방문요양기관 관계자에게는 ‘손녀딸처럼 친절한 간병인’, 수완에게는 ‘젊고’, ‘예쁜’, ‘(추방당할지 모르는 처지의) 중국인’으로, 해준의 아내 정안에게도 ‘예쁜’ 사람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평가 중 무엇도 서래의 본질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오로지 해준만이 서래를 알아본다.


내가  서래씨를 좋아하는지 알아요? 서래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고도 그렇게 꼿꼿한 사람은 드물어요.  그게 서래씨에 대해서 많은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영화 속 수많은 사랑 고백 중에, 해준의 알듯 말듯한 ‘꼿꼿하다’는 표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더 나아가 최고의 사랑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서래가 예뻐서도, 착해서도, 어떠해 ‘보여서’가 아닌, 서래의 삶과 본질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주기 때문이다.


서래는 마지못해 어머니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왔고, 자신을 학대하는 남자와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겪었다. 고단하고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 서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골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따라서 서래라는 사람의 진면목을 한 눈에 알아보는 해준은, ‘마침내’ 서래에게 있어서 ‘단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영화 마지막의 서래의 결정이 그다지 애통하거나 서글프지 않았고, 그녀다운 선택이었고 행동으로 느껴졌다. 영화의 편집 역시 서래의 주체적인 결단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서래의 결심은 해준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헤어질 결심’의 의도는 상대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가 아닌, 오히려 그 반대-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사람은 ‘헤어질 결심’ 따위 하지 않는다. 대부분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사랑해선 안 될 사람도 (걸리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물고 빤다. 그렇기에 서로를 절실히 원하지만 선을 넘지 않으려는 절제된 주인공들의 태도는 사랑의 품격을 보여준다.


영화가 끝난 후 마음이 애달파지는 것은 서래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도 해변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해준 때문일지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마지막 해준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색,계>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연인의 침상을 어루만지며 갈 곳 잃은 양조위의 눈빛을 연상케 한다. 영화 속 사랑에 전부를 걸었던, 죽기 전 남긴 산오의 말이 그들을 위로해주려나.


너때메 고생깨나 했지만  아니었으면  인생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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