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없는 사회』(이반일리히) 발제 4장 아나키즘 교육사상~맺음말
이미 우리에게 뼛속까지 익숙해져있는 현대사회의 사고체계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사상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책을 읽노라면, 당장은 실천하지 못할지언정 정신적인 해방감에 온 몸이 짜릿하다. 『학교 없는 사회』는 우리가 얼마나 사회의 제도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맹신하고 있는지, 이 모든 수용이 결국 시스템의 유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옮긴이에 따르면 저자가 현대 서양의 본질을 “자신의 구제를 위해 타인을 조작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하는데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논리인 착취 구조를 예리하게 묘사하는 말로 느껴졌다. 이밖에도 학교화된 사회가 유포하는 거짓 논리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 더 좋은 결과가 생긴다, 단계적으로 올라가면 반드시 성공한다(23p)”, “수업을 공부라고, 학년 상승을 교육이라고, 졸업장을 능력의 증거라고 혼동하게 된다” 등 ‘가치의 제도화’가 초래하는 문제에 크게 공감했다. 따라서 나 역시 일리히가 이 세상에 필요하다며 애정해 마지 않는, ‘에피메데우스적 인간’-“기대가 아니라 희망에 가치를 두는 사람들, 상품보다는 인간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고 싶다.
요약
<옮긴이 해설> 4.일리히와 아나키즘 교육사상 5.다시 무엇이 문제인가?
맺음말: 학교 없는 사회
4.일리히와 아나키즘 교육사상
‘반국가주의’, ‘자율주의’로서의 아나키즘은 현대적인 진보교육운동의 기본으로 학교교육에 대한 비판은 곧 국가주의적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아나키즘은 “개인의 자유와 자치를 증진시키는 사회체제의 개발에 관심을 가지므로, 자유와 자치를 파괴하는 국가 및 시스템(학교나 교회)을 부정(305p)”한다. 아나키즘에 따르면 자유란 “자신이 행동선택에 책임을 지고, 강요된 도그마로부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뜻하며 “국가주의 교육은 그 통제권을 쥔 사람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기존제도를 지지하고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시민의 성격과 의지의 방향을 결정하고 조작하기 위하여 이용하는 권위의 무기(306p)”일 따름이다.
따라서 아나키스트 사상가들은 국가주의적이고 계급화된 교육을 비판하고 권위로부터의 해방, 여성해방 등을 기본 전제로 삼은 교육을 주장했다.
●고드윈: 1793년 『정치적 정의에 대한 탐구』 최초로 국가주의 교육 비판, 국가권력 영구화하기 위해 교육을 이용함을 비판, 루소의 교육사상이 “‘아동의 자발성’이란 교사의 수비 범위에 있기에 조작된 자발성이며 성인의 은폐된 통제 아래 있다”고 비판, 피교육자와 교육자 간의 ‘평등한 인간관계’ 강조하며 “청년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고 느끼도록 동일한 성인처럼 그들을 대우해야 하고 그들의 행위를 도덕적이고 지적인 자의 행위로 보아야 한다(311p)”며 소규모 학교 강조
●프루동: 개인, 노동자 각자의 자립, ‘밑으로부터 혁명’을 중시하며 국가 부정, 개개인의 차이 중시, “개인과 집단의 다양성을 추구하며 사회에 내재하는 교육력, 사람들의 자발적 상호작용을 존중(312p)”하는 반정치적 교육관
●슈티르너: 자유인보다 피교육자가 많은 현대사회 비판. “만일 무엇인가가 인간의 내부에서 ‘자유’의 이념을 일깨워준다면, 자유인은 자신을 끊임없이 자유롭게 만들 것이다. 반대로 무엇인가가 그들을 ‘교육한다’면, 그들은 항상 자신을 교양 있는 듯한 점잖은 방식으로 상황에 적응시켜 결국 굽실거리고 아첨하는 사람으로 퇴보시킬 것이다.(313p)” “그가 바란 것은 의지의 작용을 통해 신념을 확보하는 것이다. 즉 무엇을 믿고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유용함을 사람들이 알게 돼야 하며, 모든 생각과 행동은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갖는가라는 관점에서 판단돼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315p)”
●톨스토이: 이반일리히와 가장 유사한 교육사상, 공부는 교육의 과정이 아니라 문화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ex. 학교는 학생에게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박물관 견학과 공개강연 제시), 루소의 세계관과 유사하게 세계가 ‘자연’의 이상상태로부터 벗어나 악한 세계가 되었으며 그 원인은 교육이고, 동시에 자연의 상태를 회복하는 수단도 교육이라고 보며 “모든 아이들을 의자로부터 해방시킨다”며 아동의 선한 본성 존중 주장. 유럽여행 후 21개의 민중학교 개설(“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등과 자유이다.”) “교육의 본질은 학생이 삶에 대해 갖는 관심을 개발하고 삶의 문제점을 아동과 함께 해결하는 것이라고 주장(321p)”
●페레르: “국가는 교육을 통한 사회혁신이 아닌, 자본의 이익을 올리기 위해 완성된 노동의 도구, 개인, 노동자를 필요로 했기에 학교를 만들었다(322p)”고 주장, 학생을 유순하고 복종적인 경향으로 키웠으며 그것에 의한 노예화와 억압체제의 타파를 주장, 학교에서의 인간해방교육 구상
●간디: 교육의 목표란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의식하는 것”이며 “정신적인 힘으로 전 세계와 전 인류를 품어내려는 땅을 이룩하는 것”이다. 유럽문명에 대한 모방과 수입 경계, 현대의 학교 교육을 “수많은 노예를 생산하는 공장에 불과”하다고 비판, “일=교육”으로 육체노동 중시(물레질과 농사일 의무), 1년에 3개월 도보여행, 힌두어 교육 등 강조
●바베: 간디의 정신적 후계자, “인도어에 ‘가르침’이라는 말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는데, 이는 누구나 스스로 공부하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도와줄 수는 있지만 가르칠 수는 없음을 뜻한다”. 국가가 통제하는 교육의 위험성 주장. “공부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며 그 목적은 자유, 이는 오직 삶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노동을 통한 자립 강조.
●부버: 유토피아 사회주의, 교사는 학생의 자발적인 힘의 개발을 목표로 삼는다. ‘교육적 포옹’(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교사의 지도적인 입장에서 전개되는 인간과 인격간의 대화관계로 인격적 결합 동시에 학생을 세계와 결합시킬 수 있다.)
●리드: 부버의 교육사상 계승하여 자유의 의미 강조, 좋은 교사란 사랑과 신뢰에 근거한 인간관계, 서로 간의 협동과 상호 부조의 인간관계로 인내심이 강한 협력자로서의 교사상 강조
●굿맨: 의무교육체제 비판이 일리히에 영향, “학교 교육이 개인에게 딱지를 붙이고 등급을 매기며 증명서를 받아 사회에 들어가게 하는 하나의 절차가 됐고, 이 모든 것은 지배적 산업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322p)”고 보며 ‘자유학교’ 주장.
●라이머: 학교는 교육을 위한 자본과 시간을 빼앗아 사람들은 진정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상실한다고 비판, 집권된 학습네트워크 주장
●홀트: “교육에 반대하며 하기(스스로 방향을 정하며 목적 있고 의미 있게 살고 일하는 것)를 지지”함. 교육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믿지 않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스스로 만들어내는 의미를 가치 없다고 하며, 세상과 삶의 의미를 알려면 타인에게 의존해야 한다(336p)”고 말한다. 학교가 만드는 아동은 기회주의적 인간이자 타율적인 인간이 된다.
●프레이리: 『피압박자의 교육학』 “교육자는 강요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하며, 강요는 명령, 명령은 조종, 조종은 결국 아동의 물질화, 비인간화를 의미(338p)”한다고 비판. 피억압자=민중의 침묵의 문화이며, 이를 주체적으로 귺복하는 방법을 창조, ‘문제제기 교육’으로 기존의 ‘은행 저축식 교육’ 비판. “교사는 가르치기만 하고 학생은 가르침을 받기만 한다. 교사는 사고를 하고 학생은 사고의 대상이 된다. 교사는 행동하고 학생은 교사의 행동을 환상처럼 따른다. 교사는 학습과정의 주체이나 학생은 단지 객체에 지나지 않는다.(339p)” 침투가 아닌 주체이자 수평적 관계로서의 대화 강조(→민중교육론, 노동운동론)
5.다시 무엇이 문제인가?
●학교교육의 기원과 파탄: 학교화와 교육은 교회와 종교의 속성과 같으며, 근대적인 인식을 거쳐 교육은 “인간 생명 유지에 절대로 필요한 능력”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경제인이 중심인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국가는 국민에게 법적권리를 부여하고 경제인의 육성을 위한 국민교육 실시함. 서양식 국가와 교육에 대항해 20세기 초 간디는 ‘새로운 교육’ 주장하며 자립과 자급을 강조한 풍요와 존엄의 교육 강조.
맺음말: 학교 없는 사회
“학교는 억압적이고 인간을 소외시키며 비인간화하는 곳으로서 기존 사회의 유지라는 목적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348p)”
“‘학교 없는 사회’는 인간이 무엇을 배우고 싶을 때 그것을 나름대로 배울 수 있는 것을 모색하는 사회다.(3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