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직업, 엄마라는 정체성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돌봄을 위하여
오랜 숙원이던 아이를 낳고 나서 똑똑해진 느낌이었다. 하고자 하는 일도 잘 풀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 명확해졌다. 아이고, 우리 아가는 정말 복덩이다 복덩이, 하며 이렇게 쭉 잘 살면 되겠구나 싶고 난임으로 고생하던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오늘 문득 자각했는데 나는 너무나도 쉴 틈 없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은 적어도 오후 5시 이후로는 쉬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새 일적으로, 엄마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또 무리를 했다. 늘 그렇듯이 습관적으로, 관성적으로.
다 큰 나를 챙겨주는 건 나 자신이어야 하는데 자꾸만 나는 뒷전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게 바로 엄마 정체성 아닌가? 싶어 순간 소오름.
내가 한때 지구 끝까지 도망치고 싶었던 엄마라는 직업, 엄마라는 한 가지 정체성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발악하듯 살아냈지만 결국 이렇게 무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다름 아닌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 이데올로기였다. ‘아이가 있는데도 ~ 하다니 대단해’ 따위의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난 뭘 해도 ‘나쁜 엄마’와 ‘멋진 엄마’ 사이에서 허덕이겠구나. 엄마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
돌봄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며 ‘내새끼’에 국한한 사적 돌봄이 아닌 공적 돌봄, 서로를 주체로 성장시키는 돌봄, 돌봄이 살아있는 공동체가 내 활동의 지표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나 스스로를 잘 돌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최근 나 스스로를 패싱하고 타자를 향한 무리한 돌봄욕망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들여다 보아야겠다. 끊임없이 나 자신을 ‘00한 엄마’로 규정짓고 디벨럽하려는 욕망이 감지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