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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01. 2023

'이모님' 없이 아기를 키운다는 것

2022년 육아노동 총결산- 또는 성장담

아기 어린이집 방학기간이던 지난 한 주, 거진 독박육아로 인한 피로감에 밤 10시만 되면 아기와 함께 기절하듯 잠이 들어 새벽에 화장실 갈 때서야 깨는 루틴이 반복되었다. 오늘도 역시나 깨고 나니 열두시가 훌쩍 넘어 새해가 까꿍, 2023년이다.


2020년 아기를 낳고 나서 한동안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아이 돌봄에 있어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거나, 돌봄을 외주화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이는 당연히 부모가 키워야 한다,고 믿는 고지식한 면은 타인의 시간을 사들일 여유까지는 없는 우리 부부의 경제력에서 나오는 방어 논리였을 터다. 또한 돌봄 하청은 부자들의 삶에서나 등장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SNS에서 알게 된 같은 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 중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육아를 돈으로 외주화하며 자신의 시간을 확보하는 모습을 보았다.


순진하게도 나는 그때서야 처음으로 돈의 많고 적음이 명품백 소유 여부의 차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해 만난 연세대에 입학한 청년은 입학생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강남 친구들과 자신이 다른 점 중 하나가 ‘이모님’의 존재 여부라고 말해주었다. “동기들은 어린시절 피가 섞이지 않은 이모님이 돌봐주는 삶을 디폴트로 생각하더라구요.”


우리 부부는 국가에서 전액에 가까운 비용을 부담해주는 출산 후 산후조리 서비스와 어린이집을 제외하고는 돌봄을 위탁할 곳이 전무했다. 사적인 육아돌봄 서비스는 한참을 망설이게 되는 고비용이었다. 타인의 시간을 전액 자부담으로 사는 것은 당연하게도, 우리에게 너무나 비쌌다. 차라리 내 한 몸 고생하고 말지, 무리해야 했다. 모유수유 부작용으로 가슴에 주사기로 고름을 빼가며 독박육아를 한 기억, 열감기에 걸려 몸져누운 채로 아이를 본 기억, 육아 하청이 너무나도 필요했던 순간들….


하지만 그런 문제는 어떻게든 돌파해 나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그럴 수만 있다면, 육아를 외주화할 수만 있다면, 가장 간절하게 하고 싶은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헬스를 하거나 물리치료를 받거나 회사에 복귀하기 전 승진에 유리한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거나 아니면 별다른 이유가 없거나- 그런 이유들은 아무렴, 부럽지 않았다. 다만 아기를 이모님께 맡기고 글쓰기 클래스에 다닌다는 사람은 마치 내 치부를 건드린 것처럼 아팠다. 그 당시 수많은 상념들이 기록되지 못하고 육아노동으로 갈려 나갔다.


그나마 2022년은 아이가 두 돌이 지나면서 제법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덕분에 아기가 잠들어 있는 시간-주로 새벽에 깨서 글을 쓰거나 일을 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새벽 시간에 글을 읽거나 쓰고, 필사를 하고 업무를 보는 등의 작업을 하는 것은 어느새 호젓한 리추얼을 넘어서 하루의 중요한 일과로 자리 잡았다.


자다가 깨서 뭔가를 하는 것이란, 아기가 생기기 전에는 잠이 많은 나에게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돌봄과 작업> 정서경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를 낳은 후로, 진짜가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아졌다”는 말. 아이 때문에 새벽에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주는 에너지 ‘덕분에’ 새벽에 깨어있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고 정신승리를.ㅎㅎ)


여전히 나는 “부양가족의 욕구와 자신의 야망 사이에서 힘겨운 선택을 해야했다(예술하는 습관)”는, 여성 예술인들의 고민을 동일시하곤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무수히 많은 돌봄노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내가 타인의 시간을 사들여 아이를 비교적 수월하게 키웠다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또다시 정신승리에 불과할지라도) 한 존재를 온전히 책임지는 경험을 하면서 ‘마침내’ 나 자신이 되었고 우리가 되었다. 여기까지, 2022년 한 해 육아노동 총결산- 또는 성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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