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쯤, 친한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그가 초등학교 고학년 아들에게 딸기를 꼭지를 칼로 떼어내고 네 등분 해주는 다정한 모습을 보았다.
다소 의외의 모습, 평소 카리스마 넘치던 언니가 아이도 거칠게(?) 키울 줄 알았던 나는 약간의 놀라움과 불편감을 느꼈던 것 같다. ‘굳이? 과잉보호 아니야?’ 이러다 그 아이가 스스로 딸기 꼭지를 떼어 먹을 줄 모르는 어른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하등 쓸데없는 걱정을 3초간 하면서.
하지만 이윽고 그건 어떤 면에서 내 어린시절의 박탈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무도 생선살을 발라주지 않았고 딸기 꼭지를 떼는 것은 커녕 구경조차 드물었던 나에게는. 그리고는 생각했다.
‘혹시라도 이다음에 아이를 갖게 되면, 나 역시 딸기 꼭지를 떼서 한입에 먹기 좋게 썰어 포크로 찍어주는 엄마가 될까?’
그때의 그 성마르고 불안정했던 젊은 여성은 어느새 어설프게나마 '다정함'을 흉내내는 엄마가 되었다.
아기가 딸기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주워서 먹어도 돼’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는, 아이가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는 먼저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쿨한 마음의 온도를 높이려 애쓰는 엄마가 되었다.
어제 저녁 아기와 딸기를 먹으며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