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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05. 2023

누구를 위한 노동윤리인가?

MZ의 조용한 퇴사를 응원하는 이유

올 겨울 우리가족은 추위를 피해 종종 찜질방을 찾곤 하는데, 자주 가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찜질방이 있다. 이 안에 입점한 식당에서 치킨과 생맥주 판매, 홀 청소 등 쉴 새 없이 일하며 업무가 광범위한 중년여성 직원분은 언뜻 보기에 사장님 포스다. 개념적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고 노동자는 남의 일을 해준다는 점에서 볼때 이 분은 전자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데도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며 성격도 유쾌하셔서 손님들에게 던지는 멘트 서비스도 훌륭하다.


요컨대 맥주를 주문하면 거품을 1도 내지 않고 넘치기 직전까지 따라준 뒤 손님에게 "아유 너무 많이 따라서 죄송해요. 들고 가다가 넘칠 수 있으니 꼭 한입 마셔요~"라며 너스레를 떠는데, 모두에게 던지는 고정멘트다. (항상 거품 없이 잔뜩 따라주는 것을 보면 사장이 아닌 것이 분명함) 리필할 때도 마시던 잔에 달라고 하면 잔 뜨거워져서 맛없다며 기어코 차가운 새 잔에 따라준다.

 

그런데 정작 답답한 부분은 이것이다. 자신이 40분 정도를 일찍와서 일하는데 항상 초과분 임금을 떼인다며 하소연하길래, 넘어가지 마시고 잘 기록해두셨다가 그만두실 때 꼭 청구하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러면 나중에 벌받는다고 자기는 열심히 착하게 살거라는 힘빠지는 소릴 하는 답정너 스타일이 아닌가. 실은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어필하기 위해 꺼낸 말에, 눈치없게도 궁서체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자기 일처럼 열심인 서비스직 노동자들을 보면 생전에 우리 시아버님은 흐뭇해하시며 지나치지 않고 팁을 주셨겠지만, 나는 고구마를 백개쯤 먹은 것처럼 속이 답답할 뿐이다.


10년 전 알바하던 가게 점장으로부터 "너는 일을 참 잘한다, 내가 둔 직원 중에 세손가락 안에 든다"고 칭찬받고는 당장은 기분이 좋았으나 지나고 보니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그는 내가 열심히 일할수록 대우는 커녕 더 이용해먹을 궁리만 하는 중간관리자일 뿐이었기에.


그래서 요즘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왜 그렇게까지?싶어 의문과 안타까움이 증폭된다. 나역시 워낙 일개미 스타일이지만 '받은 만큼만 일한다'라는 MZ세대의 조용한 퇴사는 신선하고 현명한 처사로 여겨지게 된다. 이들의 소극적인 저항은 사회적으로 좀더 존중되어야 한다.


임금노동은 노동자의 행복한 삶을 위해 어디까지나 수단으로서 존재해야 하지만 과거의 노동윤리는 노동의 목적을 '노동 그 자체'로 상정했다. 결국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을 갈아넣다보면 남는 것은 직업병에 시달리는 몸 뿐이었고. 누구를 위한 노동이고 삶인가? 묻고 싶다. 어느 책 제목처럼,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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