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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28. 2021

능력주의를 대하는 노동인권교육의 자세

능력주의와 불평등의 문제가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에서 어떻게 질문되어야 할까

<공정한가?>라는 오래된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교안이 있다. 대학교수와 버스운전기사, 자동차공장 노동자, 환경미화원, 사회복지사 총 다섯 개의 직업군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교안은 각 직업의 사회적 역할과 노고를 헤아려본 뒤에 각 직업의 적정임금을 책정하는 활동이 주를 이룬다. 교안의 교훈(!)이자 목표는 (아마도) 다음과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직업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환경미화원도 대학교수 못지않게(혹 그 이상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임금은? 이처럼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대우와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다, 스웨덴을 보라, 스웨덴은 버스운전기사의 페이가 대학교수보다 쎄다! 신박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노동을 존중하는 관점이 자리 잡아야 임금격차도 줄고, 공정한 사회가 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교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태되는- 청소년들로부터 호응을 얻기 힘들어지는 모양새다. 2021년 현재, 지금 이 시대의 공정함이란 이를테면- 환경미화원과 의사의 임금 격차는 클수록 정당하며, 비정규직이 ‘날로’ 정규직이 되려고 하지 않아야 하며,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개선을 요구하기보다 조용히 집구석에 앉아 능력자들의 “(천진난만하게) 실력이 왜 없어?”라는 조롱을 감수하며 무능력하고 게으른 자신을 책망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임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들이 불평등한 사회구조(사회라는 운동장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는 사실)를 모르지 않는다. 기회와 과정부터 모두에게 공정하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다. 흙수저와 금수저,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는 ‘수저론’이 농담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 역시 안다. 이제는 “돈도 실력,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 정유라의 말은 더 이상 충격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차라리 용 드립* 남발하던 모 고위직 공무원처럼 위선적이지는 않아 쿨내날 지경이다.


하지만 공정하다고 믿었던 룰이 착각인들, 원인과 본질을 알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능력주의가 허구인 건 이준석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능력자들이 멋질 뿐이고, 능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이 수치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능력을 갖출 기회조차 갖지 못한 이들은 사회에 분노하기보다 언론에서 주기적으로 소개되는 개천용의 사례를 보며 그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는 ‘착한 빈민’이 되어간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원데이~투데이~가 아닌 역사적으로 공고하게 유지되어 왔다. 부를 소유한 자들은 항상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 역시 그들의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노동을 담당하는 다수의 민중들은 부자로부터든, 스스로든지간에 항상 천시 받아왔을 뿐이다. 이른바 “억압받는 자들의 노예의식(전태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인권교육은 노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조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처음으로 돌아가 진부한 결론에 다다른다. 자조(自助)란 ‘스스로 돕는다’는 뜻으로, 스스로 돌보고 문제 해결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진정한 비극이란 위축된 물리적 상황보다도 자신을 설명해줄 언어조차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그 어떤 유리한 환경과 조건을 가지지는 못했더라도, 사회를 바라보는 정당한 관점이 있는 한 인간은 당당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능력주의라는, 새롭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계급이나 신분제처럼 오래된 사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낡은 언어에 쫄지 말 것. 그 대신 청소년들과 노동하는 인간이 왜 주체적일 수 있는지를, 자본의 화려한 포장 뒤에 가려진, 노동해본 인간만이 알 수 있는 가치를 주제로 수다 떨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더 중요한 것은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조국 전 장관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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