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학생들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
노동인권교육 현장에서 만난 특성화고 학생 이야기
노동인권을 주제로 학교 곳곳에 수업을 다니다보면 동네와 학교의 특성에 따라 학생들과 수업 분위기의 차이가 느껴진다. 고등학교의 경우 가장 큰 차이는 학교의 목적, 즉 졸업 후 취업을 우선으로 두는지 대학 진학을 목표로 두는지 여부일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 우리는 고등학교를 인문계고와 특성화고로 분류한다.
대학 진학률 70%의 대학 중심, 학벌 중심 사회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특성화고의 진학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수성을 지닌다. 특성화고는 비율상으로도 소수다. 내가 사는 부천의 경우 23개의 인문계고 대비 특성화고는 4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인 대다수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학번’ 혹은 ‘문과야, 이과야?’라고 질문하며 상대방이 인문계고-대학 진학의 수순을 밟았을 것으로 쉽게 전제한다.
지금의 ‘특성화고’라는 명칭은 본래 실업계고에서 전문계고라는 명칭을 거쳐 두 번째로 개정된 이름이다. 성적과 대학 중심 사회에서 ‘공부 못하는 날라리들이 다니는 학교’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지지리도 명칭을 바꿔왔으나 우리 안의 인식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특성화고권리연합회’라는 단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회계과를 선택한 이유
얼마 전 특성화고에서 노동인권 수업을 진행했다. 대상은 회계반 학생들이었고 나는 이들이 어쩌다가(!) 회계라는 ‘노잼’ 분야로 진로를 정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학생들을 만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고 몸짓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이날의 경우 나를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방법을 택했다. 수업 초반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나의 노동 히스토리를 소개하던 중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일이 정산서류를 작성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학생들을 추켜세웠다. “여러분은 제가 가장 공포스러웠던 영역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려 하다니 정말 존경스럽기 그지 없네요! 노잼일 것 같은데 어째서 이쪽으로 진로를 정했어요?”
하지만 대답을 듣고 그만 낯짝이 부끄러워졌다. 학생들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다. 집안의 경제사정을 고려해 일찍이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추천받은 과라는 것, 대학을 가기 어려워서, 빨리 돈을 벌고 싶어서 정했다, 개중에 이 학교에서 가장 밀어주는 학과라고 해서 정했다는 둥, 현실적인 이유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에게 노잼과 유잼을 따질 수 있는 여유는 없었고 거창한 꿈을 꾸는 것은 사치였다. 나는 잠시 숙연해졌다.
전문계고 3학년 여학생들의 일상을 다룬 <나의 교실>(2011, 한자영 감독)이라는 다큐가 있다. GV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마음 아프고 슬프다고 하는데, 정작 다큐 주인공인 당사자들은 그런 반응이 ‘읭???’이었다고 한다. 대학진학률 70%인 인문계고-대학진학이라는 정석 코스를 밟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특성화고 학생들은 대학캠퍼스의 낭만 없이 곧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청춘들로 연민의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큐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본인이 선택한 길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살아낼 뿐인데 말이다.
하지만 나 역시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큐 속 학생들은 면접을 좀 더 잘 보기 위한 팁으로 선생님으로부터 성형을 권유받고, 힘들게 취업했지만 임금이 체불되어 다시 학교로 되돌아오기도 하며 사회인으로 생존하기 위해 눈물짓고 고군분투한다. 가장 속이 쓰린 대목은 한 여고생이 “오빠 대학 학자금을 자신이 번 돈으로 다 댈 수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7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 시다로 일하며 오빠나 남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던 이름 모를 여성 청소년 노동자들의 서사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쓰러운 건 밖에서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일 뿐 정작 당사자인 특성화고 학생들은 감상에 빠질 시간 없이 자격증 시험 준비와 면접 준비, 학교 시험까지 바쁘고 열심히 살아간다.
어쨌거나 나는 ‘고등학생’이라고 하면 수능 준비로 코피 흘려가며 공부하는 이미지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대학을 가지 않고 곧장 사회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살아가는 고등학생들이 있다는 ‘뻔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그들을 안쓰럽거나 대견하게 여길 오지랖 말고, 그들의 삶에 관심 갖고 있는 그대로 보아줄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