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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14. 2021

걱정해주는 사람

부모는 ‘걱정해주는 사람’이다.

부모는 '걱정해주는 사람'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도, 존경하는 선배도, 애인도, 내 걱정을 해주진 않는다. 누구나 친한 사람의 안위를 신경 쓰고 걱정할 때도 있겠지만 그건 일시적일 뿐, 자신의 삶의 영역으로 돌아오면 새까맣게 잊는다.


걱정은 가족, 특히 부모만이 해줄 수 있는 영역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부모는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대체로 자식 생각을 당사자보다도 많이 한다. 종교가 있는 부모라면 기독교 신자는 교회에서 자식을 위해 기도할 것이고 불교 신자는 절에 가서 108배를 드리며 불경을 외울 것이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자식 입장에서는 ‘쓸 데 없는’ 것으로 느껴질 때가 대부분이지만, 부모들은 걱정이 지나친 나머지 혼자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속앓이를 하고, 지나친 간섭을 행사하기도 한다.


최근 불쑥 걸려온 전화에서 아빠는 다짜고짜 나에게 치과는 다녀왔냐고 물었다. 저번에 보니 앞니에 충치가 생긴 것 같은데 빨리 가보라는 성화에  나는 오로지 전화를 빨리 끊을 요량으로 ‘네네 알았어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도 의외성에 놀랐다. 겉보기에 무심하기만 한 우리 아빠 같은 사람도 자식 걱정은 하고 사는 법이다.


 남편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이제 부모 없이 홀로 남은 남편이 불쌍해서 울었다. 남편을 챙겨줄 사람이 이제 나 뿐이라는 사실도 막막했다. 아버님을 생전에 마지막으로 뵀던 날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저녁 식사자리였다.


그날은 남편에게 힘든 일이 터졌고, 그가 식사 도중 담배를 태우러 나간 사이, 아버님은 걱정스런 얼굴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었다. 지금도 아버님의 걱정스런 눈빛이 눈에 선하다. 아버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 눈빛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 삼우제를 지내던 날, 나는 살면서 아버님 몫까지 남편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결코 아버님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가 ‘더는  위해 기도해  사람이 없구나느끼지 않길 바라며.


그래서 최근 하는 걱정은 그가 하루 빨리 치과를 다녀야 할텐데…이다. 몇 달 전부터 치과엘 가자고 얘기 중인데 몇 달 째 얼렁뚱땅 넘어가는 중이다. 내일은 압박의 수위를 더 높여서 남편 이름으로 치과를 예약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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