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흥디자인 Oct 16. 2020

방콕을 헤매다

매번 가도 새로운 그곳




나의 첫 해외여행 도시는 방콕이었다. 해외여행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 그리고 여행 가방도 변변치 못하던 그 시절에 방콕은 별천지처럼 느껴졌다. 낯설기만 했던 방콕의 당혹스러움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가이드가 있는 패키지여행이었건만, 무엇이 그렇게 놀라웠을까. 자유여행에 익숙해진 지금의 내가 생각하면 첫 여행은 어이없을 정도로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났다.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다른 곳을 여행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방콕에서 제대로 놀고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도 간절한 생각이었지만 정작 생각을 현실로 꺼내놓은 시점은 첫 여행부터 한참 지난 후였다.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겨우, 방콕에 발을 들였다. 첫 여행과 마찬가지로 두 번째 여행도 저가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그리고 돈므앙 공항에서 내렸다. 돈므앙 공항은 그 시간 동안 변함없이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딘가 모르게 낡은 듯한 분위기, 에어컨 바람 사이로 맡을 수 있는 독특한 향. 변하지 않은 모습에 친근함이 느껴졌다. 방콕이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고 여기게 만든 건 공항의 분위기가 컸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던데



하지만 방콕이 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사이 방콕에는 수완나품이라는 신 공항이 생겼다. (2006년도에 문을 열었으니 신 공항이라는 말도 무색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관광대국이라는 태국이 돈므앙 공항만 유지 할리는 만무했다. 이미 10여 년 전에도 미어터지는 공항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단순한 사실을 놀랍게도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구글맵을 수시로 보던 나였지만, 공항을 찾아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


검색을 좀 더 자세히 했다면, 그리고 비행기 티켓에 조금만 돈을 더 썼더라면, 우리는 수완나품 공항의 세련된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을 터였다. 방콕이니까 무조건 저가 항공의 가장 싼 좌석을 골라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10여 년 전의 추억에 눈이 흐려져 제대로 방콕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지역을 여행하지 않으면 그곳에 대한 생각은 계속 정체되어 있다. 엄연히 사람이 살아가는 곳은 발전하고, 나아진다. 그 사실을 방콕에서 깨닫게 되었다. 같은 곳을 계속 여행하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여행 또한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공항뿐만 아니라 도심에서도 방콕의 변화를 더 확연하게 느꼈다. 한국 뺨치게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카페와 레스토랑,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쇼핑몰, 아시아 디자인의 핵심을 보여주는 갤러리와 미술관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물론 고급스러운 동네를 벗어나면 여전히 예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약간은 더럽고, 질서 정연하지 못하는 동남아 특유의 분위기 말이다. 첫 여행에서 들렀던 왕궁, 사원, 재래시장 또한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다는 듯이 그 모습을 꾸준하게 유지했다. 아예 다른 나라를 붙여놓은 듯한 도시의 분위기가 처음엔 낯설었지만, 생각해보면 서울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시의 모습은 나라에 상관없이 그렇게 어느 정도는 비슷한 모습을 연출한다. 멋지고 세련된 풍경만 가지고 있는 도시는 거의 없다.





아마도 예전에도 방콕에는 이런 간극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남들이 하듯, 왕궁과 사원, 카오산 로드를 다니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유명 관광지만 다니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는다. 여행지의 변화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충격의 연속이었던 두 번째 여행 이후, 방콕을 몇 번 더 가고 나서야 이런 변화를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첫 정을 주었던 여행지여서일까, 방콕 여행은 자꾸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허세롭게 방콕 즐기기




더럽고 지저분한 공간을 탐방하는 여행은 20대에 모두 했다고 여긴 우리 부부는 고급스러운 곳만 찾아서 허세스럽게 여행하자고 다짐했다. 다행히도 방콕에는 우리 부부가 365일 매일 가도 될 만큼 멋진 곳들이 즐비했다. 아니,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곳이 생기니 평생을 다해도 다 즐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세롭게 방콕을 탐방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는 카페에 가서 브런치와 커피를 즐기고,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들러 현지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한다. 고급스러운 마사지 숍에서 타이 마사지를 시원하게 받은 후, 저녁에는 루프탑 바에 들러 칵테일을 마시며 방콕의 야경을 즐긴다... (찡긋) 서울에서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던 일상을 보내니 부러울 것이 없었다.

 




호화로운 생활이 조금 지겨워지면, 현지인들의 일상을 맘껏 누렸다. 현지 식당에서는 우아한 카페의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가격에 끼니가 해결된다. 하염없이 재래시장을 탐방한다. 시끌벅적한 시장의 틈바구니 속에서 사람이 사는 냄새를 맡는다. 그래서일까, 방콕을 떠올리면 향긋한 냄새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초록빛 식물 사이로 낙후된 건물들과 지저분한 거리가 교차된다. 이어지는 거리 틈바구니에 세련된 도시의 빌딩들이 세워져 있다. 방콕을 하나의 모티브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시끄럽고 복작이며 향긋하면서 화려하고 시크하다. 방콕 곳곳에서 보이는 식물들을 배경 삼아, 다채로움이 담긴 방콕의 분위기를 담는다. 그래도 아직은 부족한 기분이 든다. 아무래도 여러 번 더 가야 진정한 방콕의 모습을 담을 수 있을 듯하다.



이전 07화 태국을 그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