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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Nov 15. 2022

사막여우 손절설

남편의 어록


 몇 해 전, 남편은 나에게 커플 시계를 선물했다.

사막여우가 그려진 아날로그시계.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현명한 사막 여우가 그려진 시계였다.


‘와우, 참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구나! ‘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정작 남편은 사막 여우만을 좋아하고 어린 왕자와 장미를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여보, 어린 왕자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 아니, 나는 어린 왕자가 조종사 아저씨한테 자꾸 양 그려달라고 조를 때, 책 덮었어. 걔 너무 버릇없어!”


허허, 평상시에도 징징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편이 건넨 희한한 말. 그랬구나. 새삼 남편의 확고한 취향을 다시 확인한다.


“그럼, 사막 여우만 좋아하는 거야? 사막여우는 그렇게 현명하고 예쁜데 왜 어린 왕자를 장미한테 다시 돌려보냈을까? 길들이고 관계 맺는 법을 아는 자기랑 왕자랑 사이좋게 지내면 되잖아? 그치?”


“ 아마 손절한 거 같은데.. 어린 왕자 너는 장미한테 가라… 이렇게?”


아, 남편의 획기적인 해석이 나는 오늘도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 선긋기였던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사막여우다.

내가 4시에 만나자고 하면 3시부터 설레며 기다리던 ^^


결혼 12년 차… 조금은 다른 사막 여우로 변신한 거 같기도 하다.

내가 5시에 퇴근한다고 하면 4시부터 긴장하기 시작하는 사막 여우로 ㅋㅋ


서로를 길들인 사막 여우와 어린 왕자 같은 우리 사이가 모쪼록 이렇게 이어지는 시간, 밥 먹다 뜻밖의 수다에 까르르 웃던 기록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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