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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Nov 16. 2022

선의에 대하여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다.


 업무에 파고들어 정신없던 늦은 오후였다.

익숙해 보이지만 낯선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떴다. 나는 익숙함을 이유로 학부모나 업무 관련자의 전화번호라고 생각하며 새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 네, 전화받았습니다. “


“책 도착했어요. 저는 컴포즈 커피에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여기로 오실래요?”


앗, 소보로님의 전화였던 것이다. 지난 수요일, 가제본 편집을 하면서 회의를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가제본을 주문하며 생각한 것은 10일 정도의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가제본.


퇴근 후 학교 앞에서 만날 수 있어서 더욱 환상적인 타이밍이었다. 세심한 소보로님의 배려였을 것이라고 깊이 추측하니 더욱 고마웠다. 더더군다나 오늘은 6교시 수업으로 인해서 두 딸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살짝 늦는 날이다.


퇴근  남몰래 발길을 돌린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컴포즈 커피의 문을 열었다. 홀로 컴퓨터를 하고 계실 거라는 예상을 하며 문을 열었는데 혼자인 손님들이 없다.


내가 잘못 들었나?’


갸우뚱하려는 순간, 저 멀리 니콜님이 손짓한다.

니콜님과 소보로님을 동시에 만나다니! 행운인걸?

두 분이 건넨 책을 본다.


 정성스럽게 그려진 표지로 인해 더욱 세련되진 책을 보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내 책이라고?’

 

찬찬히 책을 보는데 갑자기 현실로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아, 내 책이구나!’


내 손에 담겨 있던 고운 책. 뜻밖의 여정이 이어짐으로 만들어진 내 책이었다.


“잘팔작프”를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계속 써 내려간 글들과 모두가 으쌰 으쌰 하며 함께 만든 출간 기획서와 목차. 너무도 멋진 센스를 가져서 보는 이의 부러움을 다 가져간 소보로님의 독립출판 수업. 니콜님의 상냥하지만 내 마음을 톡톡 건드렸던 푸시와 함께 결국 만들게 된 내 책. 이 책의 원고를 쓰려고 만들어졌던 수많은 뜻밖의 자유 시간들. 고뇌하며 포기하려 할 때마다 유니콘처럼 나타나 주었던 온비님과 니콜님, 친구들의 격려…

수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작년에 성소사 송년회 때, 책 한 권을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들게 될 줄은 꿈에도 (!) 몰랐던 것이다.

아주 작은 선의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서 책을 만들었다.

 내용을 떠나서 이 책을 만들기까지의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가 떠오르니 그저 감사한 마음이었다.



어느 날, 육아와 뜻밖의 암 수술로 풀이 죽어지내던 나에게 찾아왔던 작은 소망. 나의 힘이 되어 주던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던 도서관 열람대 앞에서 스르르 올라왔던 작은 소망.


‘내 책 한 권도 여기 있으면 좋겠다.’


라던 나의 작은 소망이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이렇게 ‘ 모습을 갖춰  앞에  있다.


홀로 간직한 꿈이었으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꿈.


 인생의 모든 성취는 따지고 보면 다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룬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란 걸 너무도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지금이다.


  앞에 쓰인 ‘은혜 지음.’이라는 말이 내게 말해준다. 필명을 사용해볼 것을 권유받아서 지어본 이름이다. 추천해준 이름들이  이뻤는데  이름과 뜻이 닿아 있는  단어가 특히 마음에 들어서 고른 필명이었다.  거룩한 단어를 써도 되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거룩한 단어가 필요했던  같다.  표지 속에 쓰인 필명, ‘은혜’.


이 책은 ‘은혜’가 지은 책이란 것을 내게 가르쳐주려는 듯, 두 글자의 단어가 따뜻하게 나를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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