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와일라잇 Feb 11. 2023

나다움에 대하여

15년간 이어온 머리스타일을 바꾸려다 만 이야기.


어제, 머리를 하러 미용실에 갔다. 가기 전, 15년간 고수해 온 헤어스타일을 바꿀까? 말까? 고민하다가 바꾸지 않았다.


결혼을 하기 전, 2008년부터 나는 긴 머리에 세팅 파마 웨이브를 고수하고 있다. 이 머리는 두 번의 출산과 사십춘기에도 유지되고 있다. 때때로 컨디션에 따른 컬의 느낌 차이는 있지만.


나는 왜 머리를 자르지 않았는가?


첫 번째는 핸드폰에 남아 있는 나의 사진들을 살펴보니, 대학교 때의 단발머리보다 괜찮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단발 시절의 나는 왠지 무언가 산뜻해 보였지만 서투른 느낌이었다.

두 번째는 바꾸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정확히 바꾸고 싶은 스타일이 없어서였다. 변하고 싶다는 마음하고 무엇가를 간절히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고는 너무 다른 것이니, 언젠가 간절히 해보고 싶은 머리가 생기는 날이면 머리 스타일에 변화를 주리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며칠 전 만난 친구 덕분이겠지. 수년간 고수하던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른 친구는 너무도 산뜻해 보였다. 어떤 머리를 하던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의 이미지에 신경이 쓰였다. 나도 모르게 단발 머리한 내 모습을 연상하고는  ‘안경 쓰고 단발머리하면 너무 똑똑해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일 거 같잖아!’라면서 보여지는 이미지를 걱정했다.. 여전히 집단 안에서 튀는 내가 두려운 나는 ‘눈에 띄지 않기’를 선택하고 말았던 것일까? 의구심이 든다.


머리 스타일을 고수한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편안해진 ’ 나다운 느낌‘을 변화시키고 싶지 않기도 해서였다. 오래된 정겨운 도구들이 주는 편안함처럼. 익숙해진 내 머리스타일이 주는 편안한 느낌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나다운 것이 무엇인가?


나다움은 ‘나’라는 사람이 걸어온 ‘행적’이라고 생각한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에는 ‘피카소다움‘이 있다. 수많은 연습으로 그려진 그림과 다른 화가들과의 만남, 그만의 철학이 모여서 만들어진 그의 그림체는 그의 ’ 행적‘이다. 모사하는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게 모사를 한다고 해도 따라갈 수 없는 그만의 ’ 관념‘과 ’경험‘의 집약체가 ’작품‘에 녹아 있으므로 그것을 우리는 ’피카소답다‘라고 말하고 그를 대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글을 쓰는 이에게도 적용된다. 그가 자라온 배경과 과정, 경험, 그가 읽은 수많은 것들이 집약적으로 모여서 글 속에서 그만의 문체와 그만의 향기가 묻어 나오게 되는 것, 그만의 이야기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를 우리는 대가라고 부른다.


결국, 나다움은  ’행적‘, ’맥락‘ 속에서의 ’ 절대 시간‘이 만들어낸다.


그것이 글이라면, 나의 삶의 경험이 이어져간 시간 속에서 꾸준히 써내려 간 나의 글과 그 속에 녹아진 나만의 표현 기법과 내 생각들이 어우러진 나다운 화합체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모험의 끝에 자신이 살고 있던 집 근처에서 보물을 찾아낸 ’ 연금술사‘ 속 산티아고처럼, 파랑새를 찾아 여기저기를 여행하고 체념한 듯 돌아온 집에서 파랑새를 찾은 치르치르와 미치르처럼. 많은 신화와 이야기의 화자들은 보물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한다.


오늘 고민 끝에 만난 나는 어쩌면 수많은 모험과 시도와 실패로 단련되고 훈련된 자신이, 사실은 이 세상 누구도 견줄 수 없는 보물이라고 말해준다. 그것이 어쩌면 세상과 담은 쌓은 것처럼, 매일같이 걸으며 홀로 사색에 잠겨서 수많은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써나간 니체가 백 년이 지나도, 자신의 신화를 찾아가는 이에게 회자되는 이유이고, 수행을 통해 홀로 조용히 깨달음에 들어섰던 부처가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가르침을 주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그렇다. 15년간 같은 머리를 고수하며 그 머리 스타일 하나를 바꾸는데도 꽤나 고민이 필요한 나. 그 고민을 글로 써 내려가는 나. 그 속에서 나다움을 고민하는 생각쟁이 나. 어쩜 저리도 작은 것 하나에 심각하게 생각을 하고 있나 싶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나- 그가 내가 가진 유일한, 그리고 내가 세상에 건넬 수 있는 유일한 보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