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만나고 싶은 비 오는 날의 동화책
여러분은 비 오는 날이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막걸리와 파전이 생각난다면, 으른미가 넘치는 분!
으스스한 귀신 이야기가 생각난다면, 동심이 넘치는 분이 아닐까요?
이상하게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으스스한 느낌을 받나 봅니다. 해처럼 빛나는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태양이 없는걸 기가 막히게 느끼며 어둠과 으스스한 그 느낌을 잘 느낍니다. 그리고 자주 저를 향해 외치곤 하지요!
"선생님, 무서운 이야기 해주세요!"
비 오는 날이면 저는 아이들과 함께 <오싹오싹> 시리즈를 읽습니다.
귀여운 갓 아기에서 벗어난 ‘재스퍼’라는 토끼가 주인공인 오싹오싹 시리즈는 아이들에게 참 많은 사랑을 받은 동화입니다. <오싹오싹 당근>을 시작으로, <오싹오싹 팬티>와 <오싹오싹 크레용>까지 줄지어 베스트셀러에 오르곤 했지요.
<오싹오싹 당근>은 갓 아이가 된 토끼 재스퍼가 이상하고 으스스한 당근을 만나면서 시작했지요. 너무도 좋아했던 당근이지만 언젠가부터 어쩐지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재스퍼를 따라다니는 당근들의 흔적이 당황스럽습니다. 그 당황스러움을 벗어나고자 당근들을 몽땅 가둬버리는 계획을 실행하는 재스퍼와 반전 결말이 인상적인 책입니다.
<오싹오싹 팬티>는 어떤가요? 이제 막 수면 독립을 이룬 토끼 재스퍼가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팬티 한 장을 사면서 벌인 귀여운 소동은 우리 어린이들을 웃게 하는데 대성공을 했지요. 안 그래도 혼자 자는 게 무서워 죽겠는데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팬티가 공포스러워진 재스퍼는 팬티와 헤어지기 위해 별별 일들을 다 벌입니다. 그런데 모든 고민 끝에 새로운 시선으로 이 팬티를 바라보자, 재스퍼를 둘러싼 두려움은 정말 멋지고 기발하게 해결되는 멋진 엔딩이 마음에 쏙 드는 책입니다.
<오싹오싹 크레용>은 좀 더 고뇌스럽고 괴기스러운데요? 학생이 되어, 세상에서 숙제가 제일 지겨운 토끼가 된 재스퍼 앞에 나타난 의문의 크레용. 그 크레용만 쓰면 노력 없이도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100점을 맞는 이상한 크레용 덕분에 재스퍼는 공포에 빠지지요. 모두가 부러워할만한 상황인데, 왜 공포가 느껴질까요? 이야기의 끝에 발견한 지혜로운 결론 앞에서는 재스퍼의 성장이 느껴집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토끼 재스퍼는 갓 학생이 된 귀여운 1학년 독자들과 같은 처지입니다. 좋아하던 당근에서 문득 공포를 느끼는 모습에서는 성장해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면 독립이 참 어려운 아이들에게 오싹오싹 팬티가 주는 두려움에 대한 공감과 극복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요. 학업 스트레스가 생겨나기 시작하는 학생 재스퍼가 만난 크레용은 우리 아이들의 고민이 묻어나는 선망의 대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아이들과 이 동화들을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낯섬’과 ‘두려움’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성장동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주제이지요.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낯선 것과의 두려움’을 재치 있고 신나게 풀어나가는 재스퍼의 용기를 통해 어쩌면 아이들은 두려움을 공감해 주고 스스로 풀어나가는 용기 있는 친구를 만난 기쁨에 빠져 드는 듯합니다.
태양만 가득할 것 같은 성장의 나날 속에서 가끔 만나는 비 오는 날, 아이들과 함께 무서운 이야기를 읽으며 두려움을 만납니다. 그 두려움의 끝에는 언제든 그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힘, 해결할 힘, 재치 있게 극복할 힘이 있는 한 친구이자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멋진 용기의 비 속에서 촉촉해지는 나를 만납니다.
비 오는 날, 비 맞으며 쑥쑥 크는 새싹과 나무 같은 아이들과 오싹한 동화 한 편 어떠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