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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와일라잇 Feb 10. 2024

유럽에서 네가 본 것들

초등생 두 딸과의 유럽여행기 1

지난 1월, 대학 동기들과 그 자녀들로 구성된 10인의 미니 투어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시작은 아주 작고도 작았다. 아이들이 또래여서, 나이가 비슷한 이유로 종종 놀이터에서 만났던 우리는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키즈 펜션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초등생이 되어서는 캠핑장, 여름 바닷가를 함께 누볐다.


 2023년 1월, 경주로 2박 3일 역사 탐방을 함께 갔다. 아이들과 엄마들만 모여서 비행기를 타고 경주로 떠났다. 낮에는 경주 여기저기를 누비고 밤이면 숙소에서 뒹굴뒹굴하며 이야기꽃을 피운 우리는 자라나며 더욱 성숙해진 아이들 덕분에 즐거운 여행을 만들 수 있었다. 돌아오며 다음에는 어딜 갈까? 의논을 하다가 처음에는 백제의 유적지에 가자던 의견이 해외로 눈을 돌렸고 결국은 무려 이탈리아 로마와 프랑스 파리를 향하게 된 것이다.


 제주 - 김포, 인천- 로마, 로마-파리, 파리 - 인천다시 김포 - 제주에 이르는 5번의 비행과 행군으로 이루어진 11박 12일의 여정.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던 아이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정이고 아이들을 위해 이루어진 여행이기도 하다.


돌아와서 유럽 여행기를 자랑스레 펼쳐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써볼까? 아무리 생각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 시작을 제공해 준 것은 나의 사랑스러운 딸 덕분이다.


 큰돈 들이고 큰 수고와 위험부담을 지고 갔던 유럽 여행이기에, 엄마는 잔소리쟁이가 되었다. 가기 전부터 세계사 공부에 열을 올리고 어떤 위험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으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잔뜩 일장 연설을 했다. 지켜야 할 일과 해야 할 것들의 연속인 일장 연설.


여행지에 가서는 콜로세움의 역사를 읊고 어디가 황제가 앉았던 자리인지, 시민들이 어디에 앉았는지 더위를 피하기 위한 천막은 어디에 설치되었는지, 이 건물 가득 물을 채우기 위해서 어떻게 수로를 설치했는지… 끝도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엄마들의 연설을 피해 갈매기와 비둘기 떼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콜로세움 여기저기서 인증샷을 찍고 다음 일정을 바쁘게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갈매기가 한 마리 날아와서 담 위에 앉았다. 마치 극 E성향의 사람처럼, 군중들의 관심을 유도하며 이리저리 걸어다디던 갈매기. 그 갈매기가 신기하다고 몰려간 아이들은 연신 카메라로 갈매기를 찍고 그 앞에 다가가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고 집중하며 갈매기를 바라보았다. 5분 정도 기다리다가 초조해진 엄마들은 아이들을 불렀다.

앞으로의 일정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행에서의 많은 순간들이 이랬던 것 같다.


 돌아와서 사진 앨범을 만들어 보려고 하다가 문득 아이들은 카메라에 어떤 순간을 담아왔는지가 궁금해서 아이들의 사진을 공유해 보기로 했다. 둘째가 가득 보내온 사진 속에서 발견한 갈매기가 나를 바라본다.

  ‘너는 여행에서 무얼 보았니?‘라고 묻는 듯하다.

고양이 보호 구역이라던 이탈리아 남부의 어느 시골 마을의 고양이도 느긋한 걸음으로 걸으며 내게 묻는다.


’ 너는 내가 기억나니?‘


카메라 챙기며 설레어하던 두 딸들에게


여행은 자랑하러 가는 거 아니고, 생각도 넓히고 마음도 넓히러 가는 거야!라고 말하던 내 카메라 속의 인증샷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갈매기. 인증샷 찍을 일없이 조용하던 마을에서 어디서 사진 찍을까 고민하던 내 곁을 스쳐 지나갔던 느긋한 고양이.


여행 속에서 내가 발견한 것들과 딸이 발견한 것들, 보았던 것들이 분명히 다를 것이라는 걸 배우게 해 준 갈매기와 고양이의 눈빛.


그 앞에 마주한 부끄러움 덕분에 오히려 힘을 얻어 여행기를 써보려 한다. 네가 보았던 것들, 그 시간 그 공간, 그 갈매기를 하찮게 여겼던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너무도 아름다운 순간이었던 콜로세움과 갈매기처럼, 어쩌면 너무도 하찮아 보이던 내 순간들이 적다 보면 아름답게 말을 걸어줄지도 모를 일이니깐.


그 시간, 그 온도, 그 밀도 속에서 내가 온전히 느낀 유럽이 내게 다시 말을 걸어주길 바라며 이 글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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