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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 Jul 19. 2022

나보다 못하는 파트너와 테니스 대회 나가면 생기는 일

6. 멘탈 관리 - 억장이 와르르, 괜찮지만 괜찮지가 않아! 

2022 NH농협은행 올원 아마추어 테니스 오픈. 난 2030 여자 루키부에 출전했다. (사진=태리)



구력 2년도 안된 내가 근래 두 달간 전국대회·구대회· 구력 3년 이하 대상 루키 대회 등 총 네 개를 나갔다. 경험에 의의를 둔 다른 대회들과 달리 루키 대회는 승산이 있다고 봤고 욕심도 났다. 우리나라에선 테니스 경기 대부분이 복식으로 진행되기에 좋은 파트너 찾기가 결국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파트너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물론 뛰어난 실력이겠으나 동성 간 하는 복식에선 자신과 실력 차이가 월등히 나는 파트너들과 나가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자신보다 잘 치는 사람이랑 치고 싶은 게 당연하기 때문에 더 잘 치는 사람 입장에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굳이 손해를 감수하고 나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간 대회에서 운 좋게도 나는 모두 나보다 잘 치거나 엇비슷한 파트너와 나가서 해당 부분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다가 가장 최근 대회에서 나보다 못 치는 파트너와 나가면서 정말 다채로운 감정을 겪었다.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렇게 다채로운 줄~♪)     



우선 출발부터 조짐이 썩 좋지 않았다. 한 차로 가기로 해서 파트너 집 근처에서 오전 7시에 보기로 했다. 늦을까 봐 택시를 탔는데 준비하는 중이라고 약속 장소가 아닌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채비를 마치니 거의 7시 30분 가까이 돼서 출발했다. 경기하기 전에 든든히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길래 14분 정도 떨어진 식당을 들렀다. 파트너는 식사가 나오기 전에 잠시 편의점에 들러 마실 거리를 사러 갔다가 돌아와 같이 식사를 마쳤다. 밖에 나왔는데 차 문이 안 열렸다. 아까 편의점에서 산 것들은 차에 넣으면서 차키도 같이 넣어 버렸던 것이었다.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르기보다 집에서 스페어 키를 가져오는 게 빠를 것 같아 택시 타고 다녀왔다. 가는 길에 대회 본부에 전화해 조금 늦을 것 같은데 괜찮은지 양해도 구하고 다사다난했던 가운데 어찌 됐건 출발을 했다. 과정이 순조롭진 않았으나 위기나 돌발상황에 담담한 편이라 내 멘탈엔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파트너도 그런 듯했고, 재밌는 일화 정도로 넘겼다.       



도착한 순서대로 경기가 치러져 우리는 한 50분 정도 대기하다가 우리 조 이긴 팀과 겨뤘다. 첫 경기라 살짝 긴장했던 데다가 커피까지 마셔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원래 카페인에 살짝 민감한 편인데, 앞으로는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경기 직전에 카페인을 섭취에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는 우리와 실력이 엇비슷한 터라 자칫 방심하면 후루룩 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집중하려고 했다. 내가 스트록이 센 편이라 전위가 발리로 끝낼 수 있는 찬스 볼이 여러 차례 왔는데 파트너가 에러를 몇 번 하니 김이 샜다. 그러다 내가 칠 볼이 아닌데 무리하게 포칭을 하다가 에러를 하면서 팀 기세가 꺾였다.      



복식 게임에선 ‘한 사람만 팬다’는 전략이 있다. 상대적으로 못 치는 사람한테 주야장천 공을 주면서 에러를 유발하는 것인데, 경기 중후반부쯤 상대의 타깃은 내 파트너였나 보다. 전위로 나가 있는 데도 계속 공을 줬고, 에러가 지속되자 위축된 게 보였다. 나도 찬스 볼이 왔을 때 나의 장기 중 하나였던 끝내는 발리에서 실점을 몇 번 하면서 파트너에게 미안해졌고, 서로가 미안해하며 플레이를 하니 잘 안 풀렸다. 어려운 볼 쳐놓고 쉬운 볼 에러 했을 때의 허탈함이란. 두 번이나 노에드에서 승기를 잡지 못했으며, 앵글샷, 로브 등 다양한 샷을 구사하는 상대에 비해 힘 있는 스트로크와 끝내는 발리에만 의존해 정면승부를 보려 했던 내 플레이 스타일도 패착 원인이 됐다. 결국 6대 4로 졌다.      





두 번째는 구력이 6개월도 안돼 보이는 팀이 경험 삼아 한번 나온 듯 해 손 안 대고 코 푼 격으로 쉽게 이겼다. 긴장이 풀리니까 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발리도 원하는 대로 잘 됐고, 파트너도 안정을 되찾아서 에러가 많이 줄고 평소대로 잘 쳤다. 우리한테 처참히 말리는(?) 상대팀을 보며 내가 2년도 안됐는데 전국 대회에 나가서 참교육당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6대 1로 이겨서 조 2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게임이 끝나고 우리가 좀 안타까웠는지 오픈코트 엄파이어가 위치 선정에 대한 조언을 해주셨다. 내 파트너가 발리를 잘하지 못하는데 앞에 서있지 말고 뒤에 서 있으라는게 주요 요지였는데 당사자인 파트너는 상당히 불쾌해했다. 틀린 말을 아니었으나 하나 한 게임을 진 데다가 원하는 대로 기량 발휘가 안됐던 차에 일면식이 없는 누군가의 말이 기분 좋게 들릴 수는 없겠다 싶었다. 자신이 아는 국화부나 오픈부 우승자도 섣불리 조언을 하지 않는다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적절한 말씀 하신 것 같다’가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여기서 우리의 관계를 끝낼 수는 없었기에 꾹 삼키고, ‘오지랖인 것 같다’로 동감 의사를 밝혔다. 오픈코트 엄파이어는 나중에 집에 돌아가는 우리의 뒤통수에 "지고 이제 집에 가는 거예요?"라는 말을 하며 다시금 화를 북돋았다. 악의 유무는 알 수 없으나 이겼는데 집에 갈리는 만무하지 않은가ㅎㅎ     



세 번째 게임은 조 1위로 올라온 팀과 했다. 양 선수 다 특출 난 비기는 없었으나 뚜렷한 약점도 없었다. 차분하게 공을 따박따박 넘겼고, 자세가 라켓을 잡은 시점부터 꾸준히 레슨을 받은 것 같았다. 로브도 적절히 띄울 줄 알았고 강하게 들어간 내 서브도 잘 넘겨서 살짝 멘탈이 흔들렸다. 끝내는 발리를 할 수 있는 찬스 볼이 오지 않았고, 아직 노련하게 다양한 샷을 구사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거기다가 파트너의 실점 상황이 이어지자 어차피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막판에는 거의 놓아버린 듯 경기 운용을 했다.      






파트너를 잘 다독이면서 내 멘탈을 챙겼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대회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적절한 분석을 통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분명 나도 몇 번의 에러를 했는데도, 파트너의 실수가 더 크게 다가왔다. 내가 나가자고 한 거기에 어찌 됐든 좀 더 챙겨주고 같이 파이팅을 했어야 했는데,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커 승부에 지나치게 매몰됐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테린이다 보니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른 실력 편차도 큰데, 당사자인 본인은 얼마나 속상할까 싶었다. 복식은 같이하는 운동이고 상대와의 호흡이 중요한데 상대를 챙기는 넓은 아량이 부족한 나는 어쩌면 단식에 더 어울리는 인간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향은 차치하더라도 스트로크가 좋으니 단식하면 잘하겠다는 코치님의 말도 스쳐 지나갔다.   


   

같이 대회 나가서 쌍욕하고 다시는 보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는 얘기를 더러 들으며 예전에는 무슨 인성 파탄자들인가 했는데 어떤 포인트에서 빈정이 상하는지 이제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하지만 연이은 실수를 하니까 살짝 짜증 나기도 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내가 옹졸한 걸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새삼 나보다 뛰어난 역량을 갖추고도 잘 다독여줬던 많은 이들이 성인군자처럼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회가 끝나고 복기하던 와중에 대회는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결국 승패가 정해지며 끝이 있지만 파트너 선택을 잘못해 시작된 결혼 생활은 쉽게 끝내지도 못하고 답이 없겠구나란 생각까지 이어졌다. 다만 내가 한 선택이기에 누굴 원망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그릇을 실감했고,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다시 와도 보살처럼 굴 자신은 없다.



아마 이 파트너와는 영원히 대회를 같이 나가지는 않겠지만,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둘 다 사회생활 짬바가 있기에 대회가 끝나고 밥 한 끼 먹으며 고생했다는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자식도 낳고 길러봐야 부모 마음을 알게 되듯 내가 더 못하는 당사자가 되는 순간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지. 아직은 아니다. 속상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는 하루였다.






->다음에는 내가 빌런이 되는 편이 이어진다.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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