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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 Mar 29. 2022

2030 세대가 테니스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5. 시대도 그들을 돕는다


경기도 양평군에 위치한 아지트아날로그. 서울에서 멀고 코트비도 비싼 편이지만 한 번은 가볼 만하다. (사진=태리)



테니스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코트에는 2030이 대거 유입되는 '세대 혼합'이 이뤄지고 있으며 높아진 수요로 어느 때보다 코치 구인난도 심화한 상태다. 서울에서는 한정된 공간으로 실외 테니스장에서 레슨을 소화하지 못하면서 곳곳에 실내테니스장도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다. 패션 업계 역시 테니스 관련 브랜드를 속속 선보이며 의류 시장도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지난 2018년 호주오픈 4강에 오른 정현 선수 활약으로 전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테니스를 배우려는 사람 급증한 것과는 규모, 지속성 측면에서 사뭇 다른 양상이다.     




우선 테니스 열풍의 기저에는 코로나19라는 외적 변수가 존재한다. 해외여행을 갈 수 없게 되자 테니스와 골프로의 유입 인구가 늘었다. 실내에서 밀접한 접촉을 하는 운동 대신 실외에서 상호 간 접촉이 적은 두 운동이 선호도가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레슨을 제외하고 테니스는 실외에서 단식을 하든 복식을 하든 자신이 커버해야 하는 각각의 공간이 존재해 상호 간 접촉이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명목하에 한때는 코트가 전면 폐쇄되기도 했다. 조금 지나선 복식을 금지하고 단식만 허용하거나, 코트 내 인원 제한을 뒀다. 거리두기 4단계 시행 당시에는 저녁 6시 이전에는 복식이 가능하고, 6시 이후에는 복식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테니스 동호인들 사이에선 “낮에 복식을 하면 코로나에 안 걸리고 저녁에 하면 걸리느냐”는 반문이 나오기도 했다.  


(사진=태리)




    

이처럼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테니스는 접촉이 적은 실외 스포츠로 확실히 자리매김했고, 코로나 시국에 테니스를 시작한 이들의 상당수는 경로 의존성에 따라 운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러나 궤도에 올라 재밌게 게임을 즐기기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운동인 만큼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많다.




골프는 한 달간 빡세게 레슨을 받으면 필드에 나가 치는 흉내라도 내지만, 테니스는 한 달 배워선 게임 자체를 할 수 없다. 실제로 운동에 관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던 2명의 지인은 ‘열풍’을 좇아 테니스를 시작했으나, 2~3달 배우고 그만뒀다. 생업이 바쁘면 계속 레슨받는 것도 쉽지 않고, 실력이 정체된 상태에서 기약 없는 레슨만 받다 보면 지루하고 금방 싫증이 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이 테니스에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헤리티지가 있고, 오랫동안 상류층이 즐기는 ‘귀족 스포츠’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특정 상품을 사며 동일 상품 소비자로 예상되는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현상인 ‘파노플리 효과’에 대해 언급했다. 테니스도 소비재라는 재화로 치환해서 본다면 결국 테니스를 치면서 현대 사회의 귀족으로 대변되는 상위층과 자신이 일시적으로 같은 부류라고 여기며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는 추론을 해본다. 방탄소년단 진, 소희, 홍수아, 경수진 등 많은 연예인들의 테니스 치는 모습이 노출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2030은 여유가 된다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 인스타그램에 올릴만 한)한 장소를 방문해 그곳에서 테니스 치는 사진과 동영상을 업로드한다. ‘귀족 스포츠를 즐기는 멋진 나’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선 패션도 중요하다. 근사한 테니스웨어를 착용하고 코트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모습은 SNS에 올릴만한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들 역시 이전보다 확연히 커진 테니스 관련 시장 수요를 잡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와 팝업 스토어를 선보이고 있다. 또 의류, 신발, 라켓 브랜드들은 테니스 인플루언서들에게 제품을 협찬하고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홍보 효과를 노린다.      


대표 테니스 직구 사이트 중 하나인 테니스웨어하우스. (사진=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에서 테니스 의류와 신발 시장은 불모지나 다름없다. 일반 매장에서 관련 상품을 찾기 힘들고, 동대문에 위치한 전문매장을 가도 종류는 다양하지 않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동호인은 신상품이 출시되면 대개 해외 직구를 통해 구매를 해왔으나 번거롭고 받아보기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국내 소비자를 겨냥해 국내 신생 브랜드들의 론칭이 잇따르고 있으나 나이키, 아디다스, 라코스테 등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아직 뚜렷한 강자가 없기 때문에 향후 시장에서 선점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30의 열광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으나 지속성을 담보하는 그 기저에는 결국 테니스 본연의 매력이 있다. 테니스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두고 주체적인 판단과 실행을 통해 즉각적인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운동이다. 공이 스윗 스팟(Sweet spot)에 맞아 원하는 감도와 거리, 방향으로 날아갔을 때는 짜릿하다. 움직이는 공을 열심히 쫓다 보면 잡념도 사라져 2~3시간은 훌쩍 간다. 이러한 이유로 별생각 없이 테니스를 시작했다가 빠져드는 사람도 많다.      


마르셀 뒤샹을 오마주 한 것인지 의문을 자아냈던 작품(?) (사진=태리)



2030 초보들이 테니스를 이어갈 수 있는 여건도 전보다 좋아졌다. 이전에는 초보들은 게임에 잘 껴주지 않고, 눈치가 보였다면 요즘엔 초보들을 위한 소규모 그룹 레슨과 모임이 있어 텃세 없는 환경에서 비슷한 실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테니스를 즐길 수 있다. 기존에 있는 유서 깊은(?) 클럽보다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만들고 점차 인원을 늘려 나가는 추세다. 이 때문에 테린이들의 유입으로 정기대관에서 코트를 빼앗겼다는 기존 클럽들의 볼멘소리도 나온다.      



    

나는 두 가지 상반된 성격을 가진 클럽에서 활동하는데, 중장년층이 많은 역사가 오래된 클럽 같은 경우에는 수준이 높고 배울 점이 많으나 나이나 실력에서 파생하는 불편함이 있다.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과 하는 클럽은 아무래도 좀 더 마음이 편하고, 친해지기 수월하지만 서로 싫은 소리를 안 하다 보니 발전이 제한된 즐테(즐거운 테니스) 느낌이 강하다.       



2030은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통해 테니스와 관련한 콘텐츠를 다양하고 재밌는 방식으로 접할 수 있다. 자연스레 일반 동호인과 선수 출신의 접점도 늘어나고, 동호인뿐 아니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지도자들까지 유튜브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도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례로 전 테니스 선수 이형택은 ‘머드리TV'라는 채널을 운영하며 상금을 내걸고 동호인과 단식을 하거나 함께 테니스를 치고 여러 조언을 해주는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전(前) 테니스 선수 이형택의 유튜브 채널 '머드Lee'. (사진=이형택 유튜브)



오랜 기간 동안 실력을 연마해 대회에 출전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테린이’가 나갈 수 있는 대회도 많아졌다. ‘월간 테린이’, ‘바볼랏 언더독’, ‘겟올라잇 순한 맛’ 대회 등은 구력 2~3년 미만으로 제한을 두고 테린이도 우승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한다. 계량적 지표와 성과주의에 익숙한 이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가늠하고, 증명할 수 있는 해당 대회에 대한 호응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기겠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가끔 구력을 속인 이들이 출전해 ‘실격’을 당하는 일도 생긴다.    



  

2030의 특성과 함께 시대도 그들을 도우며 테니스 수요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요즘엔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던 실업팀 선수까지 다시 돌아와 코치로 전향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내가 배우는 곳에선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난 뒤 황금시간대로 꼽히는 저녁에는 레슨 대기자 수가 100여 명을 넘어섰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테니스에 열광하는 2030과 복합적인 상황 등이 어우러지면서 우리나라 테니스계는 전보다 활력을 띄며 다채롭게 변모하고 있다. 좋은 시절에 테니스 잘 치고 있다.


(사진=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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