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테니스도 사회적 운동이다.
자전거 타기처럼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적어도 한 명의 상대는 반드시 필요한 '같이 하는' 운동이다. 테니스를 치다 보면 매번 멤버를 꾸리고 코트 예약을 하는 게 번거로워지고, 어딘가 소속되고 싶다는 욕구도 생긴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것이 동호회 활동인데, 테니스만 치는 게 아니라 사람과 감정이 부딪치다 보니 다양한 일이 생긴다. 사람의 성향이 제각각이기에 맞는 동호회도 다를 수 있으나 그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한 몇 가지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1. 성향에 맞는 클럽 찾기
이왕이면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으나, 실력이 뛰어나지 않을 때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대개 모든 사람이 잘 치는 사람과 치고 싶고, 시간과 돈을 들여하는 운동에서 굳이 못 치는 사람과 치면서 재미보다 재능기부를 추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친분이 있다면 그들의 배려로 가능하므로 고수와 친하게 지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내 수준보다 높은 클럽, 비슷한 클럽은 일장일단이 있다.
잘 치는 사람이 많은 클럽의 장점은 우선 내가 보고 성장할 사람이 많다는 데 있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표본에 노출되는 빈도가 많아지면서 어떤 유형의 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테니스를 생각 없이 치면 물구력만 쌓이는데, 가끔 내가 치는 걸 보고 지나가듯 몇 마디 던지는 조언들이 상당히 날카롭고 필요했었던 것들인 경우가 많았다. 잘 치는 사람은 절대 상대가 공을 쉽게 받게 주도록 주지 않기 때문에 센 볼, 많이 튀는 볼 등 어려운 구질의 공을 받는 연습도 돼서 좋다.
내가 겪었던 여러 시행착오들을 이미 한 번씩은 겪었던 터라 시기와 상황에 맞는 최적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다. 잘하는 사람이 많은 클럽은 마치 강남 8학군과 비슷하다. 스스로 학습하면서 겪는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원하는 목표를 향한 최적의 길을 제시해주는 일타 강사들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오로지 목적이 실력 향상이라면 무조건 잘 치는 클럽에 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다만, 자신의 수준이 미진하면 서러운 꼴(?)을 당할 수 있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지인 중 한 명은 구력 3년 정도 됐을 때 클럽을 들고 싶어 잘 치는 어르신들이 많은 곳을 찾아갔는데 알은 채도 잘 안 하고, 게임에도 잘 안 껴줘서 서러웠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한파나 폭염 같이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지인이 껴야 게임을 할 수 있을 때가 돼서야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때로부터 3년이 흘렀고, 지금 내가 보기엔 꽤 잘 치는데 아직도 그렇게 무시를 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을 자산으로 실력 향상을 해 언젠가 그들이 쳐달라고 매달리게 만드는 복수를 해줄 것이라며 이를 갈고 있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클럽은 주변 사람과 자신의 실력을 실시간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분명 백핸드 높은 볼이 약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잘 처리하는 걸 보면 나도 안주하지 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경쟁심과 승부욕이 있는 사람이면 나보다 비슷했던 사람이 잘 치면 자극을 받고 실력 향상에 매진하게 된다. 비슷한 실력끼리 치다 보면 정신력과 집중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 한공한공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게 된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원래 나보다 잘 쳤던 사람에게 지는 건 쉽게 수긍하더라도 비등비등한 사람에게 지면 기분이 좋지 않다. 역으로 실력이 비슷한 파트너에게 칭찬받으면 빈말이 아니란 걸 알고, 와닿기 때문에 더욱 뿌듯하다.
단점은 멘토가 부재한 스타트업 같은 느낌이다. 나보다 월등한 실력에서 이끌어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자기 주도적 테니스를 추구해야 한다. 서로 비슷한 실력이라서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경우도 있다. 대개 이런 클럽은 1~5년 차가 모인 곳이라 연혁이 오래되지 않아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회칙, 회비 운영 등의 문제로 구성원들 간 종종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1~5년 차에는 실력의 변화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시기이기도 해서 실력 향상도에 따른 이탈자가 많아 동호회의 부침이 심할 수 있다.
2. 기본적인 매너 숙지하기
1) 레슨에서 안 배우는 사소한 것
게임을 하게 되면서 무지가 자칫 비매너로 오해받을 수 있는 사소한 포인트들이 있다. 레슨에서 가르쳐 주지 않고 교본에도 없어서 대개 치면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세세한 부분이지만 미리 알면 좋을 것 같아 몇 가지 소개한다.
우선 서버에게 공을 줄 때 멀리 있는 사람부터 줘야 한다. 공은 1~2 바운드돼서 서버가 받기 쉽게 가도록 건네줘야 한다. 간혹 공을 받을 준비가 안됐는데 냅다 공을 주거나 두 사람이 동시에 주는 경우는 은근 기분이 나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반대로 서브를 할 때는 상대가 준비됐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해야 한다. 한국 동호회에선 첫 게임에 이를 꼭 ‘안녕하세요’로 하니 다소 어색하더라도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길. 게임 중에는 코트 뒤를 지나가는 것을 지양하고, 한 포인트가 끝났을 때 최대한 빠르게 지나가는 게 좋다.
2) 파트너 예절
유태인 속담에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는 말이 있듯, 테니스에서도 웬만하면 입을 닫는 게 좋다. 상대가 에러를 자주 하거나 나보다 못 치는 것 같을 때 꼭 핀잔을 주거나 훈수를 두는 이들이 있는데 클럽 내에서 평판이 좋지 않고 뒷말이 나온다.
게임을 꾸릴 때 자신과 못하는 사람이랑 치는 것을 상당히 불쾌해하며 ‘이번 게임은 쉬어 간다’ 는 식으로 대놓고 피하면서 티를 내기도 하는데 이해는 가나 그냥 평소에 해보고 싶었는 것을 해본다는 시간으로 삼아보시라.
공을 안 주으려고 가끔 보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누가 주울까 애매한 공일 땐 뱃살이 조금이나마 빠진다는 긍정적 마인드로 내가 움직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회가 아닌 만큼 동호회에서 지나친 승부욕은 지양하는 게 좋다. 같은 동호회 사람인데 내일 안 볼 것처럼 라인 시비로 싸우고 이러면 배척당한다. 앞으로 굴러도 뒤로 굴러도 인(in) 같지만 셀프 저지인데 어쩌겠나. 윔블던 뛰는 거 아니니 쿨하게 인정해주자.
3. 친목은 적당히-불가근불가원
모든 운동 모임엔 뒤풀이가 바늘과 실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테니스 동호회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대학 테니스 동아리 출신들은 “동출이면 엄청 잘 치시겠어요”요 란 질문에 “대학 때 테니스를 치기보다 술을 많이 마셔서 잘 치진 못한다”는 대답을 열에 아홉이 했다. 테니스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술자리에선 ‘테니스 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는 농담을 건네받으며 쉽게 친해진다. 최소 주 2회씩 모임이 이뤄지고, 뒤풀이까지 한다면 그 시간들이 쌓여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의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알게 된다.
호형호제하며 인생 인연이 되기도 하나 어딜 가나 빌런이 있다. 술자리에서 알게 된 것들에 기반해 이리저리 말을 옮기거나 부풀리면서 이간질을 하거나, 한 사람을 바보 만들기도 한다. 친해지면 선을 넘거나 사소한 걸로 금방 섭섭해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나를 노출하는 건 그만큼 구설에 오르게 되는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 동호회에도 5년간 서로 죽고 못살던 사이였던 두 명이 서로 오해가 쌓여 심하게 다투고 나간 사건이 있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개인적으로 현명한 처세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