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체육대회 준비 시 타국을 경시하는 사람도 있어 진통 겪어
우리가 사는 대전지역에도 어느 사이엔가 외국인들이 많아졌다. 나는 한국청년해외봉사단 초창기 파견으로 국내연수을 3개월 받았다. 한 십 년 전에 월드프렌즈 대전세종충남커뮤니티 모임에 나가보니 국내파견연수교육이 한 달이라고 했다.
후배들에게 묻고 싶었다. 국내 파견교육에서 다른 나라에 파견이 되어서 현지인 친화교육과 더불어 다른 나라 봉사단원들과 관계, 북한 사람들을 접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육을 받는지 말이다. 우리 때는 없었다.
방글라데시에 첫 파견기수로 코디네이터가 짜준 프로그램대로 방글라데시 현지 교육에서 말도 생소한 일본국제협력단이 JICA 방글라데시 사무소을 방문하고 일본협력대인 JOCV의 환영만찬에 참석차 일식집도 방문을 했다. 일본 봉사단원들과도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일본인들은 친절하게 내가 원예분야인 것을 알고 1968년에 일본 JICA에서 만들어진 방글라데시 과수와 채소에 대한 책자 복사본을 건너주었다. 그것을 보면서 나도 한국어로 방글라데시 과수와 채소에 대한 책자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국내에서 대학 4학년 때 삼육외국어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러 다니면서 일본인을 만나서 인지 일본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다. 일본인들은 친절했다. 내가 봉사자로서 원예분야에 대해서 어떻게 일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을 때 탕가일에 원예분야로 파견되어서 일하는 봉사자가 있다며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방글라데시 CERDI 연수센터에서 무작정 탕가일 가는 버스를 탔다. 현지인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방글라데시에 파견된 지 2개월이 되었을 때쯤이다. 나는 용감하게 코리아 유스 볼런티어 검정가방 하나 들고 얼굴색도 다르고 복장도 다른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에 올라탔었다. 탕가일에 갔다.
당시 탕가일에는 방글라데시의 꿈의 다리인 조무나 브리지가 현대건설과 네덜란드회사가 함께 건설하고 있었다. 물론 하청한국건설회사로 삼환건설들이 참여하고 있었다.ㅣ
탕가일에는 세명의 JOCV가 한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모두들 나에게 잘 대해주었다. 일본어와 방글라데시어와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알기로는 일본인들은 자기네 나라 말을 하는 사람을 영어 하는 사람보다 경시한다는 글을 봐서 일본어 하는 것은 자재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잘못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전문 대을 나왔다고 했는데 탕가일 센터에서 나중에 원예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펀딩을 구해 현지인이 교육하는 원예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일본도 기금 마련이 쉽지 않아 다른 국제 엔지오로부터 지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했다. 다른 나라엔지오와 친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도 느꼈다.
방글라데시 KOICA지역사무소 코디네이터는 스리랑카 선배봉사단원출신이었는데 스리랑카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해 세계은행과 일을 했다는 이야기들 들었다.
이러한 중요한 이야기를 일본인들을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봉사단 파견 국내 교육에서는 듣지 못한 이야기였다.
일본인 친구는 다카에 오게 되면 내가 근무하던 아사드게이트원예센터에 문을 들어서면서 박상을 부르면서 걸어왔다. 그녀의 소개로 다른 일본 봉사단 단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은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왔다. 일본 JOCV가 봉사자들 체육대회를 기획하고자 하는데 한국청년해외봉사단도 같이 할 수 있느냐고 한번 같이 만나기을 원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JOCV도 영국문화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나는 한국코디네이터에 이 일을 전하고 그 사전준비회의에 참석을 했다. 영국봉사자 대표는 넥타이을 매고 서류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회의에 참석하면서 우리는 몇 명 안 되지만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는 자기네 JOCV는 방글라데시에 80명인데 20명 정도만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감정이 안 좋은 사람도 있다고 말이다. 영국봉사자 대표는 자기 내들은 자유분방해서 말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봉사자의 날인 12월 5일에 전 세계적으로 엔지오들이 함께 행사를 치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 LET's play sport 명명하에 여러 번의 모임을 치르면서 진통을 겪고 이 모임이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원예분야 일본인 친구가 다른 일본 남자 단원들과 내가 사는 집을 방문해 한국청년해외봉사단 단원들과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을 갖었다.
국내에 돌아와서 알았다. 외국의 임지에서 다른 나라 봉사단원들과 같이 일하면서 갈등을 겪은 경험담도 들었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에서 한국해외봉사단 월드프렌즈로 거듭나면서 외국 봉사자들과 관계, 현지인들과 협력관계,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서 일을 처리해 나갔는지 사례로 연구해 국내 파견교육에서 다루었으면 한다.
물론 국제 간의 관계에 있어서 누가 잘 나고 못나고는 없겠지만 누가 보스이고 직원이고 떠나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협력해서 현지인을 잘 사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협력함에 있어서 파생되는 갖가지 사례를 연구해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많은 외교협정도 맺고 이행해 가며 실리을 따져야 하지 않을까 본다.
지금 현재와 같이 엔지오들이 어린이 지원, 교육사업지원등을 떠나서 농촌개발협력사업에 적극적이었면 한다. 또한 현지생활보고서도 만들어 우리의 나아갈 방향도 논의가 되는 국제협력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우리가 도와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우러 가는 것이라고 국내파견교육을 하셨던 분이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