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자주오고 습기가 많은 나라라 다리미로 옷을 다려 입어
어디를 가나 시간, 장소,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젊어서는 민감했다. 한국에서 지역지을 다닐 때 어느 보도자료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평상시에는 그냥 평범하게 다니다가 인터뷰나 특별한 날은 재킷, 마이을 입고 신발도 구두를 신었다.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 처음에는 공무원들을 만났다. 사디연수원연구원들도 점잖게 옷을 입고 다녔다. 잘 다려진 반팔 와이셔츠에 양복바지를 입고 다녔다. 더운 열대지방이고 풍족하지 않은 나라이지만 옷들을 깔끔하게 입고 다녔다.
나는 그곳에서 다리미을 샀다. 내가 다리미을 산 것은 깔끔하게 옷을 입기 위함이 아니라 비가 많이 와서 옷들을 빨아 널으며 꿉꿉했다. 냄새도 났다. 그리고 아마로 된 살로와르 가미는 구김이 갔다. 옷을 잘 마르게 하기 위해서 구김을 안 가게 하기 위해서 옷을 다려야 했다.
그런데 아사드게이트원예센타는 아니었다. 그곳 사무실에 근무하는 남자 공무원들은 바지에 반팔와이셔츠를 입고 다니고 여자 공무원은 사리을 입고 다녔다. 하지만 그곳에서 정원사로 일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 전통복장으로 하의인 룽기를 입고 그 위에 와이셔츠나 티셔츠를 입었다.
사무직공무원들은 말끔하게 면도도 하고 머리도 짧게 잘랐다. 그러나 아사드게이트원예센터의 말릭들은 안 그렇다. 수염도 길게 기르고 면도도 말끔하게 하지을 않았다.
날씨가 더워지자 원예센터의 육묘상에서 일을 하다가 티셔츠를 벗고 메리야스 차림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갑자기 룽기의 묶여있던 매듭을 풀고 펄렁펄렁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되었다. 여자 오피셔는 그저 웃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잔소리가 들리면 사무실 바닥에 양탄자를 깔고 기도를 올렸다.
난 가끔씩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여름에 일을 하고 돌아오시면 등목을 하셨다. 아버지는 상의를 벗고 엎으려 뻗쳐 자세을 하면 어머니는 웃통을 벗으신 아버지에 등 쪽에 차가운 물을 뿌리셨다. 우리가 크자 아버지는 등목을 안 하셨다.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처음에는 살로와르와 가미을 같이 입었다. 그러다 바지인 가미을 입고 그 위에다 셔츠을 입고 다니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옷을 나 편한 대로 입다 보니 대우도 못 받은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도 모임이 있을 때나 교육등이 있을 때는 좋은 옷을 입고 갈려고 노력을 했다.
난 부탄에서 아시아 개발은행 관계자로부터 충고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일하던 현장은 농장이다. 농장에서 신던 신발 그대로, 농장에서 입던 옷 그대로, 머리는 나풀거리고 그대로 호텔로 아시아개발은행 관계자을 만나러 갔다.
오피스에서 정시에 맞춰 퇴근하고 호텔로 가다 보니 샤워하고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나의 융통성도 문제다. 사무실에서 아시아개발은행 관계자을 만나니 일찍 퇴근시켜 달라고 하고 자동차를 내어달라고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그곳은 팀퓨시내에서 멀리 떨어져서 모두들 사무실 차로 출퇴근했었다.
정시에 맞춰 갈려고 하다 보니 옷단장도 못하고 그대로 갔었다. 그다음부터는 팀푸에 약속이 있으면 히치하이크 시도를 하던 무서움을 모르는 여자로 변했다.
브러치 스토리에 방글라데시에서 생긴 일을 올리는데 검색 1순위가 방글라데시에서는 어떤 옷을 입을까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서 오늘 이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