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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향선 Oct 24. 2024

한국해외봉사단 파견시 독서력과 다국어 언어 평가 해야

대입입시에서 논술과 면접이 중요하듯 한국해외봉사단 파견시 다국어 평가해야

나는 워낙 책을 좋아해서 방글라데시에 가서도 다카대학내에 영국문화원에서 가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읽었다. 각종 아열대 농업서적과 공중보건이 주을 이루었다.


그러다 방글라데시 다카에 소재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의 호스텔에 책꽃이을 비치할 것을 제안했었다.

물론 방글라데시의 다카에 소재한 일본 국제협력단인JICA에 호스텔을 방문하면서 그들의 시설을 둘러보며 도서관이 커서 놀래기도 했다. 그곳에는 만화도 비치가 되어 있었다. 만약 그때 jica 가이드가 일본 호스텔의 도서관을 우리에게도 개방해주었다면 내 일본어 실력이 일취월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부탄UNV로 있으면서 임업관련 국제세미나에 참석하면서 일본 어느 대학원생이 논문 발표을 하면서 벅벅되서 내가 일본어인가 영어로 차근히 설명을 해주어서 그 대학생이 논문을 무사히 발표할 수있었다. 그런데 그럼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팀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국해외봉사단으로 파견이 되는 사람은 다국어을 사용할 수록 좋다.


요새 딸을 보면서 많은 걱정과 고등학교도서관을 가보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고등학교에서도 학부모에게 대학진학설명회만 이야기 하지 학교시설을 둘러보는 시간도 없고 소개을 안한다.

요새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주도에 있다는 외국에서 들어온 사립학교들은 학부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제주도에 한 번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든다. 서울등 각지의 부자, 권력자들인 학부모들은 학교시설에 관심이 많지 않을까?

딸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때는 학교 쉬는 시간에 학교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기도 하고 책을 본다고 이야기을 했었다. 2학기에 서울에 국회의사당 도서관에 본 책을 이야기 하며 상당히 교양적인 책을 사서 놀랬다.

환경관련책과 외국인이 쓴 책인데 국내에도 알려진 책이었다. 국회의사당 도서관에서 본 책이라는 것이다.

난 괴롭거나 외롭거나 쉴때 항상 책을 보았다. 대전성모여자고등학교의 도서관은 개가식이었다. 공부하다가도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책꽃이에 가서 구경하고 책을 펼치며 읽을 수 있었다.

대전호수돈여자중학교는 1980년대 초에 폐가식이었다. 도서관 앞의 열람실앞에 목록카드을 찾아서 읽고 싶은 책을 신청해야지 읽을 수있다. 토요일 마다 학교의 열람실에서 자습을 하다가 목록카드을 뒤적이곤 했다.

내가 인도을 알게 된것은 고등학교에서 네루간디의 세계사 편력을 읽고 부터다. 중학교에서 세계사을 배웠지만 난 고등학교에서 이과 였다.세계사을 배우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때 읽었는데 감옥에 있던 네루가 자신의 면회을 온 10대 초반의 딸에게 편지을 써서 준 내용이 세계사 편력이다. 인도에 가고 싶었고 대학시절에는 인도의 명상가책들을 많이 읽었었다. 나는 1993년 외교부 산하 국제 협력단인 KOICA을 통해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방글라데시에 파견이 되었고 한국을 동방의 촛불에 비유한 로빈드로 타고르의 집도 방문해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정경특공대 라는 일본에서 발행된 책을 읽었다. 일본의 기업인 미쓰이인가 미쯔비시에서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을 주도할 일본의 젊은이들을 선발해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시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삼성에 미래전략실이 없어진 것으로 안다. 일본은 1980년대에 21세기에 세계을 주도할 인재 양성을 위해 기업에서 젊은이들에게 기숙학교에서 교육을 시작했다.

요즘 대전 둔산동에 삼육외국어학원을 갔다가 놀랬다. 인터넷으로 영어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주로 쥬니어들이 학원을 다니고 있어서. 젊은이나 어른들은 별로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등을 수강을 안한다고 한다.

1980년대 말에는 대전 중구에 있던 삼육외국어 학원은 대학생이상들만 다니는 대전 최고의 사설 외국어 교육기관이었다. 유대교라고 해서 수강생들에게 종교을 강요한적도 없다.

나는 대학 3학년때 새벽에 대전 목척교에 있던 한미외국어학원인가 영미외국어 학원에서 영어문법부터 시작해서 버케불러리 등을 공부했다.

그러다 대학 4학년부터는 일본어와 영어을 같이 공부했다. 삼육외국어학원에는 수강생이 대학생 고학년에서 일반 사회인들이 많았다. 역시 새벽반이다.오전여섯시에 수업이 시작된다. 대덕연구단지 사람들도 MBC아나운서도 있었던 것 같다. 한반에 20명이었고 모두들 열심히 일본어을 배웠다. 받아쓰기도 하고 한국말을 하면 벌금도 내고 말이다. 어떤 일본어 선생은 일본에서 고등학교을 졸업한 18세 일본어 선생도 있었다.

우리때는 일본을 배우자은 분위기여서 일본 유학을 가는 사람도 많았는데 나도 그 대열에 끼어 가려다 말았다. 일본유학원에 30만원을 내고 준비을 했는데 비자가 안되서 못갔다. 나중에 연락이 왔지만 내가 지역지에서 일하고 있어서 못갔다.

중고등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어야 꿈도 많이 꾼다. 그리고 우리때는 대학학력고사을 보고 논술을 처음으로 시행한 1986년이다.

전국적으로 입시생들이 학력고사을 보고 지원대학에 가서 논술시험을 보았다.

딸이 고3인데 딸 초등학교 3학년 밴드에 보니 어느 엄마가 앞으로 애들은 바깔레로아가 프랑스 입시을 따른다고 되었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독서논술토론교육에 그다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식당에서도 보니 서로 끼리끼리 모여서 의견을 제시하고 일을 하는데 너무나 자신의 주장만 한다. 남의 의견을 듣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너무 앞세우는 것 같다. 경청의 미덕이 필요한 시기이다.

우리딸도 요새는 고3이라 민감한지 자신의 의견만 이야기 하고 만다. 평상시에는 탁자에 앉아서 음료수을 마시며 이야기도 듣고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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