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O 연수도 받고 다양한 곳 돌아다녀

지역정치인의 NGO부터 굴산 채소 장사 시골 농장까지 방문상담

by 박향선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앉을자리와 사무실을 청소한 일이었다. 그전에 근무했던 CERDI에서는 넓은 공간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사무실을 준비해 주었다. 청소도 그 기관에 속해 있는 분이 해 주셨다. 그곳에는 빈 사무실이 꽤 있었다. 다 구경은 못했지만 도서실에도 넓은 공간에 농업 관련 책자들이 있어 사서와 원예 관련 책자를 보고 내 노트에 원예 관련 중요 내용을 적곤 했다. 작물의 수확일수에서 비롯해 토양 성분이 작물에 미치는 영향등을 영어문장으로 적어갔다. 방글라는 서툴러서 적지 못했다. 그 노트는 한국에 돌아와서 태국에 파견되었던 단원이 UNV에 관심 있어해서 빌려주었다가 돌려받지을 못했다.

사디에서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로 자리을 옮겨서 사무실 청소을 하고 창고까지 청소을 하려다 말았다. 내가 원예센터에 근무하면서 조심스러워서 그다음부터는 출근하면 책상에 앉아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오픈된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방글라데시 상류층부터 하류층까지 다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FAO에서 주관하는 PLANT propagation 트레이닝과 종합병충해 방제(IPM) 교육에서는 방글라데시 농업오피 셔들과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리더로 있던 팀이 퇴비를 만드는 일에서 일등을 하자 나에게 오비꺼또(전문가) 라고 불러주기도 했다. 교육생 중 여자가 세명이라 여자들을 리더로 정했었다.


난 지금도 방글라데시 농업성에 감사를 한다. 외국인인 나에게 FAO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서 말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FAO project manager가 여자인 것도 있지만 gender issue로 여성 오피서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해서 나와 다른 단원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단다.

나는 교육을 받고 트레이닝 교육비을 받게 되어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 사람들에게 가서 미스티(설탕물에 담근 과자)를 돌렸다.


트레이닝에서 좋은 성과를 보이자 다카대학 부총장이 찾아와서 FAO/UNDP에서 발행한 원예 관련 책자를 한 아름 안겨 주고 갔다. 채소, 과수, 농장 경영 등의 다양한 분야 책이었다. 그리고 농업기술 대학 ATI에서 강의를 해 달라는 섭외를 받았었다. 소속기관에서 NO을 해서 ATI강의는 못했다.

난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를 방문하는 지역정치인이 운영하는 NGO 농장에도 방문하기도 하고 굴산이라는 지역에서 채소장사을 하는 시골 채소밭을 보러 가기도 하고 버스를 타고 다카 시내 밖을 나가 시범농장에서 적응 테스트을 하는 딸기 육묘를 보러 가기도 했다.


한 번은 채소장사하는 분을 따라 시골을 갔는데 버스를 타고 가다가 릭샤를 갈아타고 가는데 길거리에 배가 터진 개을 보고 나는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분은 굴산에서 외국인들에게 채소 등을 파는 사람이었다.

센터를 방문하는 다른 지역의 원예센터의 초청을 받아 과일묘목을 재배하는 곳을 방문하면 밀식재배의 간격을 넓힐 것과 배수로를 넓힐 것 등을 조언하기도 했다.


과수묘목의 밀식재배는 광합성에도 안 좋고 이파리가 약간 황색을 띠게도 되고 건강한 육묘를 만들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차 한잔을 마시고 지역의 박물관을 방문하는 행운도 가졌다.

하루는 상담자와 시골을 방문했는데 연못주위로 바나나나무가 심겨줘 있고 연못에서는 생선을 기르는 농장이었다. 잘 몰라서 보기만 하고 둘러보기만 하고 오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그 당시에 야생 바나나가 있어 내 생일날 야생 바나나를 선물 받기도 했다. 바나나의 씨앗을 세어보니 60개에서 70개 정도의 검정씨가 있었다. 한국에서 팔리는 바나나는 하얀 과육에 검정씨앗이 없다.


한 번은 한국과 같은 주공아파트 정원에 나무 한그루의 문제점을 상담하러 갔는데 그분이 차 한잔을 권유에 집으로 들어가니 침대에 할아버지 한분이 누워계셨다. 그분은 해군으로 퇴역한 장성이라고 했는데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오셨다. 그리고 며칠 후 신문에 그 나라 큰 항구인 치타콩에 우리나라 해군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리 없이 조심히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힘들면 조용한 소나르가온 호텔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리고 더워서 잠 못 드는 밤에도 가끔씩은 그 호텔을 찾았다. 집에는 작은 선풍기가 한대 있었다. 한 10년 전에 대전세종충남 코바 지역커뮤니티 모임에 나가서 이야기를 해보니 지금은 에어컨을 설치하고 생활한다고 이야기했다.


방글라데시 초창기 파견멤버들에게는 생활 그 자체가 봉사생활이었고 방글라데시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시기였다.

채소.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방글라데시는 어떤 옷을 입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