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정원상담, 홈가드닝 위한 유기농 농약 만드는 법 등 현지인들 알려줘
내가 머나먼 방글라데시에 파견을 나가 근무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가 아사드게이트 너저리에서 처음부터 시골까지 방문원예상담을 한 것이 아니다. 그때 당시 몇 개월 동안은 영어로 된 원예 책을 보고 필요한 것을 적어나가고 영문 채소, 과수나무, 관엽식물 등의 책을 읽었다.
방글라데시에 사는 한국인으로부터는 한국여성잡지를 빌려 보기도 했다. 그때 그 여성지에 나오는 관엽식물 기르는 방법과 데코레이팅된 칼라 사진들이 몇 페이지에 걸쳐 있어서 그 페이지를 잘라서 파일을 만들기도 했다. 현지인들에게 그 파일을 보여 주었더니 엄청 좋아했다. 다카에는 여러 공원이 있고 너저리가 몇 군데 있는데 관엽식물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곳도 있다고 원예직 공무원은 이야기했다.
어느 날인가 아사드게이트 너저리 센터에 방문한 귀부인이 내가 외국인 것을 알자 나을 집으로 초대한다고 했다. 여자 국회의원이었다. 나는 차 대접을 받았고 그분은 여러 가지 한국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그러더니 집 옥상으로 올라가 자신이 가꾸는 화분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각종 화분에 담긴 식물들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차대접에서 한국에 대한 소개를 하는 담소을 나누는 시간을 나를 초대해 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집에서 가졌다.
어느 날인가는 세계은행을 퇴직하신 분이 원예사무실에 방문을 했다. 오피서와 채소 모종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더니 나을 보고 비데시(외국인)라며 한국에 대해서 물어오셨다. 그리고 몇 번의 방문을 더 하더니 집으로 초대를 해 주셨다. 그분의 와이프 되시는 분이 참 인자하시고 서글서글하시고 음식을 직접 만들어 대접을 해 주셨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였던 그분이 해 주신 소고기 요리가 지금도 생각난다. 약간은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왔다.
농사철이 되면 사무실은 바쁘다. 채소모종과 과수 육묘를 팔고 육묘상에 씻을 뿌려서 모종을 팔고 가정정원에 병충해 상담, 여성, 학생등의 원예교육으로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kitchen gardening project. 세계식량 농업기구가 추진하는 사업으로 집에 채소, 나무, 축산, 양식 등의 복합 농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농가에서 한 울타리 안에서 채소밭도 가꾸고 과수나무 한그루도 심고 닭이나 소도 키우고 물고기도 키우는 것이다.
원예센터에서는 다카시내에서 사는 사람들의 집에 화분이나 작은 텃밭등에서 시작해 과수나무 한그루의 병충해도 상담을 받는다. 그 당시에는 방글라데시에서는 비료나 농약이 귀하다. 그래서 나는 UNICEF의 home gardening책자에 나오는 유기농 농약을 만드는 방법을 현지인들에게 알려주었다.
유기농 농약은 담뱃잎, 마늘, 비누액체, 석유방물 등이 들어가는데 세월이 흐르니 만드는 방법도 희미하다.
그 당시 원예센터에는 부족한 물자가 많았다. 병충해 방제하는 약을 타서 물과 희석하는 약통도 너무 낡았었고 전정가위는 녹이 슬고 스프링도 헐거웠고 풀을 벤 후에 그것을 긁어모으는 쇠스랑이나 도구 등에서 모두 일일이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정말 부족한 것이 많았다. 나는 내가 카오랑 바자르에서 산 중국산 쇠스랑이 정식명칭이 레이크인 것을 한국에서 조경공부를 하면서 알았다. 시장에서 쇠스랑을 사서 가져가니 말릭이 그 쇠스랑 구멍에 나무를 잘라 끼워서 앉아서 풀을 긁어모으던 것을 서서 풀을 긁어모았다. 한동안은 가지푸르
CERDI에 계속 있었더라면 넓은 깨끗한 사무실에 실험실도 있고 조용한 고즈넉한 아열대 나무들이 즐비한 운치 있는 풍경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나는 농업성에 다카에 extesion division에 속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자니 나는 항상 긴장을 해야 했다. 한국에 대해서 영어 책자를 보고서 공부를 해서 쉬운 방글라언어로 말하고 여동생이 보내준 여성지인가로 현지인들에게 보여주면서 한국을 설명해야 했다.
KOICA에서 보내 준 화보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층민을 방문할 때는 그들이 만들어준 음식을 먹고 속이 안 좋은 적도 있었다. 아마 깨끗하지 않은 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음식을 권하면 거절했어야 했는데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아먹었다. 이슬람 종교행사인 이데르딘때는 카운터 파트너 집을 비롯해 나을 초대 해 주면 어디든 갔다. 기름진 튀김과 같은 음식이 속을 거북하게도 한다. 신문을 보니 입타르 음식 때문에 그 기간에는 배탈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 해가 뜨면 음식을 안 먹다가 해가 지면 입타르 음식을 먹는다.
방문상담을 하다가 나중에는 차대접받는 것도 힘들어서 시골 가는 초대에 오케이을 했다. 도시의 가정원예상담은 먼저, 문제점을 이야기를 듣고 해결책을 영어로 된 책에서 찾아보고 상담하러 온 사람집은 2~3일 후에 다시 방문한다. 문제점의 해결책을 몇 가지 공부해 가지고 그 과수나무 상담하러 온 집의 정원의 나무를 보고 이야기를 해주거나 했다.
하지만 다분히 사람들은 나에게 원예상담을 받는다기보다는 나을 극진히 차 대접을 하거나 점심식사등을 준비해서 나에게 배부른 맛있는 방글라데시 음식을 접대해 주었다.
나는 원예센터의 말릭들이 사는 시골의 집에도 방문을 했다. 물이 부족해서 감자를 씻지 않고 껍질을 까고 그 자리에서 칼로 잘라서 커레을 만든 음식을 먹고도 멀쩡했다.
처음에는 원예 방문상담을 할 때는 좀 긴장했다. 나중에는 여행한다고 생각하고 농장도 방문하고 다카시내의 집정원도 방문하고 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여학생이 생각난다. 원예방문상담을 하러 갔는데 그 집의 딸이 나을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고 그 녀는 자신의 방에 놓여있는 삼성 컴퓨터를 보여주었다. 그때는 그냥 스쳐 지나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는 방글라데시의 부유층이었나 보다.
원예상담을 하러 가서 여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 사는 어느 주부는 어려서 결혼을 해서 남편이 어렵다고 했다. 부유층이었는데 자신도 자신만의 일을 하고 싶고 연예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며 나를 부러워했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 국내 훈련 시에 상담스킬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남에게 하지 못하는 개인사을 외국인에게 하는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원예학과를 나왔다고 전문봉사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직업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