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방글라데시에 가 그나라 종자원에 씨앗기증
나는 방글라데시을 위해 뭔가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서 음식을 하기 위해서 시장이나 마트을 자주간다. 어느 날 부터인가 우리나라에 참깨가 외국에서 수입이 많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중국보다 아프리카인 수단인가 이디오피아에서도 말이다. 인도 등에서도 . 그리고 세월이 흘럿다.
국제협력단에서 파견하는 한국청년해외봉사단에 파견이 될때 필리핀에 파견이 되는 원예파트 남명원씨와 나누라고 농촌진흥청에서 많은 씨앗을 주었는데 그녀와 씨앗을 나누지 못하고 방글라데시에 갈때 수원 농촌진흥청에서 받은 씨앗을 방글라데시에 가져갔다.
한보따리 였다. 방글라데시에서 콩,참깨등 여러종자을 방글라데시 가지푸르에 방글라데시농업공무원연수원인 사디 옆에 seed certifcation에 종자을 좀 건네주었다.
사디의 소장은 내가 건네준 콩을 사디의 정원인 텃밭에 뿌려 이름표까지 달아주셨다. 나는 임지을 다카의 아사드게이트원예센타로 옮겼다.
어느 날 한 농업공무원이 이 원예센타에 와서 방글라데시 종자을 샀다. 이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타는 채소와 과일의 씨앗과 육묘을 팔고 상담도 한다. 수미치온으로 병충해 방제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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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종자 포장을 위해서 비닐을 사서 조크바자르에 종자비닐포장지을 만들면서 korea youth volunteer라고 박았다. 그 포장지가 인쇄된 종자을 사서 그는 갔다.그는 이야기을 했다. 나는 이 씨앗을 들고 아프리카 이집트로 간다고 웃으면서 말이다.
아마 방글라데시 종자원에서 한국 씨앗도 좀 가지고 간 것은 안니가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덕에 참깨가 많이 들어가 나물도 뭏히고 참기름으로 맛난 음식을 합니다.
어제 대전 유성 홈플러스 길너편 유림공원 건너편에 대전 이슬람 센터에 갔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정치적상황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대전언론사에 이메일을 보낼수도 있고 한국청년해외봉사단. 한국해외봉사단으로 방그랄데시을 다녀온 분들에게 연락을 해서 돕고 싶었습니다.
bangla aid 소식을 보고 돕고 싶었는데 내가 생활여건이 안되니 힘이 들어서 그만 두려다 딸을 보고서 다시 일어납니다.딸에게 이야기 했습니다.지금 알바로 식당에서 일하면 노동자이지만 내일배움카드을 신청해 컴활을 따서 판매직을 통해 사무직이나 세일즈맨이 되라고 .어학도 하라고 .방그라데시에서 봐도 노동자와 사무직은 옷부터 다릅니다.사람들에게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외국어대학은 떨어지고 재수을 한다고 국어학원을 수강하겟다고 난리입니다. 머리도 복잡해 그만두려는데 친구을 통해 일본에서 연락도 오고 영국에서도 연락이 오네요.
다시 일어섭니다. 모스크에 가서 이맘도 만나고 비지니스맨인 여행가도 만나서 매신저에 접속하고 방그라데시 후배로 아프리카에 UN으로 나간다는 후배와도 연락이 되고 어느 토후 왕자에게도 메세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정말 왕자 일까 생각도 듭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옆집 자끄마가족은 남부탄의 비하리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왕족이라고 이라고 이야기을 둘째 며느리에게서 들었습니다.
부탄에서는 같이 일을 하는 카운터 파트너였던 게장초모는 할머니가 왕족이었다고 햇씁니다. 게장초모에게 편지을 보냈는데 연락이 와 있더군요. 12월 11일 한국에 올 계획이라고 왔는지는 모르는데 어제 메신저에 답하며 제 전화번호을 남겼습니다.
어제 이맘에게 방글라데시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이야기을 전했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카이스트에는 나이 많은 학생들도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가족걱정을 많이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8월말 9월에 방글라데시 상화을 보니 방글라데시 근처인 아샘에도 공황이 봉쇄되어있었던 것 같은데.. 비비시와 UNDP대표는 사진에 얼굴이 너무 얼어 있었구요. 복장도 어술해 보이고...
작은 나눔으로 특히 여학생들이 있다면 애기을 가진 가족이 있다면 방글라 코바에 알려 도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대전유성구구청에도 글을 올렷고 대전시청에 외국인 긴급생활지원을 제안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