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정적의 기념관운영을 허용하는 정치적으로는 선진국
우리나라에 1950년대 국회의원선거는 어떠했을까? 그때 당시에 우리나라 문맹률은 어떠했을까?
내가 다녀온 방글라데시에도 국회의원선거가 있다. 그 나라는 그때 당시에 내가 생각했을때는 우리나라보다 정치적으로는 선진국이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방글라데시에 파견당시인 1993년에는 칼레다 지아가 수상이었다. 칼레다 지아 수상은 1980년대에 남편이 수상을 했다.
지금은 반대당파인 세이크 하시나 총리가 정권을 잡고 있다,내가 방글라데시에 파견되었을당싱에는 칼레다지아 총리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
어느 날 방글라데시의 잘사는 동네인 바니니 지역을 지나다가 방글라데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본거본두, 세이크 하시나 총리의 아버지 기념관을 들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돌아가신 전 대통령의 기념관이 잘 조성이 안되어 있다. 뉴스에 의하면 박정희 전대통령의 기념관이 지어졌을때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이미 1994년에 상대당의 상징인물의 기념관을 인정해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 어려운 일일 것같다. 방글라데시을 다녀오고 나서 우연한 기회에 서울 대학로 근처에 있는 이승만의 저택인 이화원을 여러번 찾았다,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우리나라도 이편이든 저편이든 후대의 대통령 기념관들이 만들어져 후세대에게 남겼으면 한다.
방글라데시는 국회의원선거을 할때 투표용지에 국회의원 후보자의 이름에 투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을 상징하는 그림에 표시을 한다고 했다, 대다수 국민들이 글을 몰라서 라고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배운사람들이었지만 방글라데시의 대다수 사람들은 배우지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사람들. 길가에서 만나는 상당수의 세발자전거을 끄는 릭샤왈라들은 간단한 영어회화을 한다,
아이러한 나라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