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글라스나 비닐하우스 재배 원예, 임업전문가가 파견되었으면
방글라데시의 CERDI에서 소속 기관장은 일본에서 지원해 세워진 비닐하우스인가 다시 사용해 주길 바랐다.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상당히 관심이 많았다.
나는 가지푸르의 CERDI에서 다카의 아사드게이트로 임지를 바꾸면서 처음에는 비닐하우스 재배를 생각했다.
그래서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에 비닐하우스을 세울 생각으로 다른 농업기관의 비닐하우스와 유리 글라스 하우스을 방문 했다.
처음에는 CERDI에서 습관대로 오피스 레터를 만들었다. CERDI에서는 필요한 것이 있거나 방문하고자 하는 곳이 있으면 말을 하거나 간단하게 써서 주면 오피서가 타이프로 쳐서 완벽한 문서울 만들어 소장의 승인까지 받아서 우리에게 주었다.
CERDI소장은 우리가 CERDI에 온다고 낡은 랜드로바인가 하는 차을 정비 해서 우리가 시장을 가면 시장까지 태워다 주었다. 신문에서 본 안사르 아카데미에서 시골의 부녀자들에게 원예교육을 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그곳에 가고 싶다고 하자 그 차에 우리를 태워 안사르 아카데미까지도 함께 방문했었다.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는 오피스 레터를 쓰는 것을 안 좋아했다. 그래도 문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KOICA에 타자기가 필요하다고 지원을 받아서 처음에는 오피스 레터를 만들었다.
방문할 곳에 오피스 레터를 보내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전화로 하고 방문하기도 했다.
다카에 북동쪽에 식물원과 동물원이 같이 있었는데 외국인 전문가가 와서 글라스 하우스인가을 세웠다고 한다. 그곳은 우리나라 비닐하우스와 달리 식물원으로 창도 있었고 지붕 쪽에 다시 벽을 만들고 문을 여닫게 만들고 다시 지붕을 올린 글라스 하우스 같았다. 외국인 전문가가 떠난 후에는 관리가 안되고 있다고 했다. 상당 부분이 비어 있었다.
그다음에는 농업성의 네모난 빌딩 한가운데에 글라스 하우스가 텅 비어 있었다. FAO전문가가 만든 글라스 하우스인데 그곳에는 에어컨이 설치가 되어 있었다. 농업성 관리는 당신이 이 에어컨도 가동해서 이 글라스 하우스을 운영 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다카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기업인 원예센터를 가보니 파란색인가 투명비닐에 대나무를 짜개 만든 것으로 반원형 비닐 하우 스을 만든 비닐하우스가 조그마하게 세워져 있었다.
가지푸르의 CERDI에는 내가 1989년에 우리나라의 흥농종묘에서 본 비닐하우스보다 좋은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비닐하우스 옆에는 도르래가 있어 비닐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시설도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받아본 아사드게이트 잡 디스크립션에서는 비닐하우스재배를 시범포장에 설치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인들은 내가 비닐하우스을 이용한 시설재배나 비닐하우스을 설치 해줄 길 바랬다.
CERDI에서 진행된 현지인들과 함께 받은 교육에서 만난 현지인은 방글라데시가 물이 많고 비가 많이 와서 인지 수막재배나 수경재배에 관심이 많았다.
텔레비전을 보니 지금은 식물공장이 있어 건물 안의 실험실과 같은 곳에서 육묘상, 재배상을 만들어 광을 조절해 채소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 멀지 않아 식물공장에서 자란 채소를 먹은 사람들은 미량원소 결핍증이나 피부병으로 고생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비닐 하우스을 만들 생각을 갖은 시기에 방글라데시의 채소 파종시기등을 알아보았는데 방글라데시 달력에 의하면 2, 3월이 파종시기고 4월 14일은 새해라고 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지을 수 있는 심플한 비닐 하우스을 스케치를 해보았었다. 아직 KOICA KYV코디네이터가 방글라데시에 오지 않아 KOICA에 우리가 버려진 자식이냐고 보고서에 제출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해 가을이 접어들면서 방글라데시에 살고 있는 한인들 대상으로 체육대회가 실시되었는데 우리 KYV단원들이 초대를 받았고 체육대회가 끝나고 나서 버려진 비닐을 나는 주워다가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에 간단한 조그마한 비닐터널을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 그 쯤에 간단한 비가림막이 하우스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대나무를 사러 대나무시장에 가서 대나무를 사가지고 와 약간은 높다란 비가림 막이 하우스을 만들었다.
2년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 KOICA에서 비닐하우스 책자를 보내왔었다. 임기 연장을 고려했지만 그보다 한국음식이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 김치가 먹고 싶었고 우리 가족이, 내 친구들과 수다가 너무 떨고 싶었다. 실상 나는 말은 그다지 안 한다.
후배 단원이 탕가일에 파견이 되면서 코디네이터는 내 임지를 탕가일로 옮기려고 하면서 임지변경될 곳을 방문해 보고 오라고 했다. 그곳에서 보니 비가 많이 와서 인지 육묘상위에 대나무살대를 네모났게 엮고 파란 비닐을 덮은 판을 덮어두고 있었다.
조심이 조심이 생각을 했다.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지원책이란 것이 어쩔 때는 우리가 지원하려는 것과 그들이 지원받았으면 하는 것이 필드에 요구가 받아져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