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 표준어 구사 위해 방글라 아카데미 다녀

로빈드로 타고르 시 떠나서 방글라 민중시인 누줄 이슬람 셩깃도 관심

by 박향선

방글라데시에서 어떤 말과 글을 쓰면서 일을 했을까? 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방글라언어 연구소인 방글라아카데미를 다니기도 했고 현지인들이 자꾸 영어로 말을 걸어와서 영어를 배우러 브리티쉬 카운실에 가서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 물론 개인경 비을 들여서 다녔다.


1993년 4월에 국제협력단 교육에 입교하면서 몽골 파견이던 것이 방글라데시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천유네스코 훈련원에서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무자디드 샤헵이 방글라의 모음과 자음등의 기본 글자 쓰는 법과 읽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훈련원에서 3개월의 교육이 끝나갈 무렵에 우리는 간단한 방글라언어로 연극을 했다. 다른 파견국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서바이벌 방글라회화를 배우고 방글라데시에 9월에 파견이 되었다. 그리고 한 달간의 방글라현지어수업을 받았다.


6명의 방글라데시 단원들은 한 달 후 각자의 임지로 파견이 되었다. 방글라데시 가지푸르 사디에 있을 때는 어느 누구도 나의 방글라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에서는 사무실로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어떤 사람으로부터 방글라를 하려면 정식으로 배우라는 핀잔을 들었다. 내가 구사하는 방글라에는 지방 사투리가 섞여있다는 것이다. 한국말로 하면 표준어인 서울말을 배우란 뜻이었던 것 같다. 즉 방글라언어인 다카표준어을 구사하라는 말이었다.


한동안 말하는 것을 조심하다가 라디오을 틀어보기도 하다가 한국에서 우리에게 방글라를 가르쳐주신 분이 방글라 아카데미에 근무한다는 것을 알고 나는 무작정 방글라 아카데미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찾아가 방글라를 가르져줄 것을 부탁하자 그들은 왜 방글라언어를 배우려 하냐고 해서 그때는 일에서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빈드로 타고르의 시을 방글라 언어로 읽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옆집에 살던 일본협력대대원인 간호사 유카리도 방글라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일본 협력대는 임기가 끝나고 나면 일본으로 돌아가 현지어 시험을 보고 합격을 하면 취업에도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방글라 국장이라는 책임감도 있었지만 단원들에게 의견을 이야기해서 방글라아카데미에서 무자디드 샤헵에게서 방글라교과서로 방글라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나보다 앞서서 우리가 임지 부임초에 한 단원은 다카대학에서 방글라언어를 배운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다시 국민학교 들어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국민학교 교과서울 보고 글을 열 번 쓰듯이 교수가 방글라를 노트에 열 번씩 쓰라고 가르친다고 이야기했다. 같은 방글라를 배우는데 북한사람과 같이 배우고 있다고 조심해서 얘기했던 생각이 난다.


방글라데시 국어 교과서울 일 학년 것부터 4학년까지 배우고 방글라 아카데미에서 수료증도 받았는데 지금은 그 수료증이 어디로 갔는지 보관을 못해서 다 사라졌다.


한데 나에게는 방글라데시에서 찍은 수많은 사람들 사진과 원예센터, 육묘상, 시범포장사진이 남아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선교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방글라언어를 방글라교육센터에서 일 년 동안 하루종일 배운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할 일을 사업계획서울 만들어 일하게 된다고 했다.


가끔씩은 방글라 현지신문의 헤드라인을 읽어보고 사진의 지문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기도 했던 시절. 보통 사람들이 방글라언어를 할 때는 소리도 크고 격하게 말을 하지만 노래로 하모니언이나 토불라(북)셩깃을 부를 때는 소리가 한없이 부드럽고 감미로워 라디오로 노래를 듣기도 했다.


일본협력대 귀국모임인 조바에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울 올림피아드 파크 호텔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그때 방글라를 다녔왔다는 일본 협력대 귀국단원과는 약간의 방글라 언어로 말을 했다.


하지만 30년이란 시간이 다가오면서는 방글라언어를 많이 잊어버리고 어떤 글자는 읽기도 힘이 든다. 페이스 북에서 방글라데시 언어를 대하면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나의 인생의 2년이란 세월을 보내온 곳을 잊기는 힘이 들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부족함이 무엇이고 나눔이 무엇이며 인간의 정, 협력, 시기와 질투, 나눔의 중요성이 무엇이고 미래세대들에게 무엇이 교육되어져야 하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식을 낳아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갖가지 상황에 대해서 오늘 하루도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방글라데시에서 일층에 살던 무슬림 가족은 오전 7시만 되면 베란다에서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아랍어인 코란을 교육했다.

방글라아카데미.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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