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한국유네스코협회 파견되다 국제협력단으로 지금은 월드프펜즈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의 3개월 국내교육이 끝나갈 무렵, 우리 단원들은 그때 당시 한국의 대통령인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했다. 청와대를 방문하고 방문기념품인 시계도 받아서 손목에 찼다.
국제협력단에서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교관들이 세계에서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러 가는 것이지만 먼저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다.
1990년 한국유네스코에서 파견되었던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1991년에 외교부에서 국제협력단을 만들면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 사업을 펼치게 되었다. 초창기 사업 때라 국가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홍보를 했다.
한편에서는 다른 엔지오들이 선교단체에서 긴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방글라데시 팀은 방글라데시 개발협회의 따스한 초대를 받았고 방글라데시 현지 사정 이야기를 듣고 현지생활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원예분야로 파견되어 나가다 보니 그 나라 농토에서 일할 것을 대비해 목장갑을 가지고 나갔었다. 아버지가 건설 일을 하다 보니 목장갑 끼던 것이 생각이 나서 말이다. 봉사단으로 파견이 되면서 손을 걱정했다. 그때는 젊었다. 그리고 흙을 만지는 일이다 보니 병이 옮길 것을 대비해 파상풍 주사를 혼자 맞을까 하다가 방글라데시 단원 전원이 함께 파상풍 주사를 맞자고 제안해 함께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 나라마다 분야마다 우리의 몸에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이 차이가 있었다.
주방한국대사관 직원들은 우리들을 따스하게 맞아주었다. 우리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고 코디네이터가 없는 동안에는 대사관 영사가 업무를 대신해서 도와주고 참사관도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외국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고 격려를 해주셨다.
주방 한인협회에서도 명절 때나 한인 체육대회에 우리를 초대해 주어 다른 한인들과 어울릴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한 번은 봉제공장이 많았던 방글라데시 한인기업에서 봉사단원들 입으라고 스웨터을 선물로 주시고 현대건설소장은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시고 다다라는 모자회사에서도 식사초대을 해 주셨다.
한인 행사가 늦어진 날에는 대사관에서 자동차를 내주어 단원들이 집까지 안전하게 도착하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
나는 UNV지원서에 네 명의 추천서울 제출해야 했었는데 방글라데시에서 우리를 돌보아 주었던 참사관님의 추천서도 하나 작성받아 UNDP에 제출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UNV을 다녀온 후 인사를 못 드려 죄송한 마음이 든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은 4기까지는 만 35세까지 대상으로 단원을 뽑다가 5기부터는 만 60세을 대상으로 범위를 넓혀서 단원들을 선발한다고 이야기를 들었었다. 지금은 월드프렌즈로 이름이 바뀌고 일 년에 네 번 파견하고 기수도 100기가 넘어가고 만 65세까지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은 월드 프렌즈로 이름을 바꾸어 전 세계 20여 개국에 파견되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 다른 나라 파견 봉사단원과 이야기를다른 나라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나라 대사관이나 한인사회는 차갑다는 이야기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초창기 파견되어 방글라데시 대사관이나 한인사회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