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V 파견을 궁금해하던 사람들에게

방글라데시에서 생활했던 경험이 부탄 UNV파견으로 이어져

by 박향선

내가 UNV로 나간다는 소식을 접한 한국청년해외봉사단 동기들 여러 명이 UNV에 지원했고 부탄에서 돌아온 후에 여러 후배도 어떻게 UNV로 나갔다 왔는지 궁금해하며 다른 지방에서 대전으로 나을 찾아왔었다. 부탄에서도 어떻게 해서 UNV가 됐는지 부탄인과 다른 나라 봉사단 단원들이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일했던 경험을 잊고 있었다. 단지 몇몇 UNV들은 자신들도 자신의 모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 봉사단생활이나 직장에서 일을 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수긍을 했다.


1993년 4월에 한국청년해외봉사단 훈련에 입소해서 7월까지 국내훈련을 받고 한 달간 파견준비기간을 거쳐 9월 2일에 방글라데시로 가는 비행기을 타고 태국에서 하룻밤을 자고 3일 방글라데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1995년 9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생면부지의 어린애인 조카를 돌보며 보내던 어느 날 낮잠을 자는 동안에 KOICA에서 전화가 왔다. UNV추천서울 보내주겠다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예라고 대답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 후에 집에 도착한 UNV 추천서 네 장을 받아 들고 대학교수님, 외교안보원에 계시던 방글라데시 대사관 참사관님, KOICA에 이사님을 찾아가 추천서울 받았고 그 당시에는 국제협력단직원은 원서울 접수하면서 이제부터는 UNDP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당시에는 국제협력단에서는 UN관련업무을 보지 않고 있었고 외교부에서 UN관련일을 보고 있었다.


그 당시 이력서울 쓸 때 방글라데시에서 젠다 이슈로 여성들에게 특혜로 FAO주관으로 실시된 작물 번식과 병충해 종합방제 IPM교육을 받은 적이 있어서 이 내용을 기재했다. 그때 이 교육을 기획한 사람은 FAO전문가로 여성이었다. 그분들을 CERDI에서 만났었는데 내 비즈니스 카드를 보더니 내 이름에 영문표기에 Y을 넣어서 적어주었다. 방글라데시 농업성 관리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교육에서 나는 오비거또라는 원예전문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난 공무원을 한 적이 없어서 교육을 받으면 훈련비가 나오는 지을 몰랐다. 나와 나의 다른 친구가 이 FAO 교육훈련이 끝난 후에는 훈련비도 받았다. 나는 아사드게이트원예센터에 돌아가 말릭들의 배가 출출할 시간에 미스티라는 기름에 튀긴 쌀과자을 설탕물에 담근 과자를 사서 이들에게 하나씩 사는 호기을 부리기도 했다.


나는 가끔씩 말릭들에게 오전 11시경에 뱅갈리 식당에서 파는 삼우샤(튀긴 카레 만두)을 사서 하나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아버지가 건축일을 하셨는데 가끔씩 일하는 사람들에게 준다고 담배를 한 보루씩 사가기도 했고 가끔씩 육체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서 오전에 야참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셨었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에게 UNV추천서울 써주신 분들의 명예에 누가 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의 계단에 밑거름이 되어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부탄에서 돌아와서 누구보다도 먼저 만나서 앞날을 의논했어야 하는 분들이 아닌가 싶다. 그때 당시에 UNV 임기을 마치면서 FAO와 IFAD에 캔디데이트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어야 했다. 당신들이 나에게 추천서울 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당신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부탄의 UNV로 일하면서 무던히도 노력했었다는 사실을....


내가 UNV로 부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내가 원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들은 남자 UNV을 원했었다고 한다. 더구나 학력도 대학원이나 박사가 아니라서 실망했다는 것이다. 열명이 지원했는데 내가 되었단다. 그러고 나서 다른 UNV들을 보니 다들 의사 박사, 미국인 UNV는 물리치료사였지만 대학원을 나왔단다. 나만 대학을 나온 학사출신이었다.


내가 부탄에서 얼마나 씩씩하게 지냈었는지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임기을 마치면서 UNV오피스에서 완주데마에게 약속을 했다. UNV에 대해서 글로 안 쓴다고.... 한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캐나다 국제협력봉사단인 CUSO출신으로 부탄인과 결혼했던 여인은 부탄에서 대해서 책을 썼고 그 번역서가 대전세이백화점에 세이문고에 진열이 되어 있었다. 대신에 나는 대전으로 나을 찾아오던 소수의 한국해외봉사단 후배들에게 말로써 질문에 답변을 해 주었다.


나도 이 순간 지난 7월에 코로나에 걸려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면서 방글라데시에 한국청년해외봉사단파견 30주년을 조용히 기념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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