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좋은 한국씨앗 지원 원해... 조크바자르에서 채소 씨앗 봉투 제작
요새는 가끔씩 안이 비치는 비닐에 농산물이나 식가공품이 든 봉지를 볼 때면 방글라데시의 조크 바자르를 찾던 생각이 난다.
방글라데시에는 1억이 넘은 인구가 살다 보니 시장도 많다. 그중에 하나인 조크바자르는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이 조그마한 인쇄기을 하나 설치해 놓고 영업하는 곳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충무로의 인쇄 거리을 찾던 생각이 난다. 물론 한국만큼 그 규모가 큰 곳은 아니었다.
아사드게이트원예센터에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어 방글라데시인들이 포대에서 바닥에 채소종자을 꺼내놓고 종자를 포장을 했다. 나도 구경을 하다가 손을 보태어 채소종자을 포장 했다.
종자포장을 하면서 그들은 이야기를 했다. 너희 나라에서 채소종자을 지원받을 수 없는지.... 좋은 종자가 있다면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에 가져와서 심자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한국청년해외봉사단 방글라데시 오피스가 문을 닫은 상태라 이야기할 코디네이터가 없어서 그들의 요구에 응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나는 다카시내의 채소종자등을 파는 가게를 여러 군데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채소종자, 화훼종자, 농약등을 파는 종자가게에는 글씨가 쓰여 있는데 그곳에는 간판에 채소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글씨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채소의 그림을 간판에 그려놓으면 사람들은 그곳에서 채소종자등을 산다는 것이다.
채소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가게에서는 대만이나 일본, 한국의 종자를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한국의 흥농종묘, 중앙종묘등의 씨앗이 반가워서 채소의 사진이 앞면에 나오고 뒷면에는 재배요령이 적혀 있는 포장된 채소종자을 몇 가지 샀다.
그 후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에서는 한국산 흥농고추을 육묘상에 길러서 10Cm 이상 되는 떡잎이 두세장 붙은 고추육묘를 뿌리째 뽑아서 신문에 말아서 판매를 했다. 사람들에게 한국산 고추라고 말하면서... 그리고 호박이나 가지등은 육묘상 근처에 심어 가꾸었다..
물론 이 종자들은 한국청년해외봉사단에서 나오는 월마다 나오는 생활비로 샀다. 코디네이터가 있었다면 아마 KOICA에 종자지원을 요청해서 한국종묘회사의 씨앗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후에 나는 아사드게이트에 종자를 포장할 봉투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아사드게이트 동료
인 아이사 등에게 물어 릭샤를 타고 조크 바자르를 찾아서 종자봉투를 만들어 사용할 것이라 얘기하고 채소씨앗봉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인쇄가게를 섭외하고 의논을 거쳐 인쇄할 도안을 만들어가고 그다음에는 얼마나 인쇄할 지도 정했다.
안이 환하게 비추는 비닐에 녹색으로 KYV로고가 들어가는 채소씨앗봉투를 만들었다. 인쇄가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후 아사드 게이트에서는 종자를 포장할 때 이 비닐봉지에 채소종자을 넣어 방글라데시의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채소씨앗을 넣어 판매했다. 이 비닐 종자봉투 만드는 비용도 KOICA 지원금이 아닌 역시 KOICA에서 나오는 개인 생활비에서 일부 사용했다.
비닐하우스을 만들까 하다가 만든 비가림비닐하우스을 만들 때도 개인돈을 사용했다. 난 한국에서 대학교에서 온실에서 꽃을 재배하고 관엽식물을 재배하고 고추육묘등을 키워 봤지만 비닐하우스 만드는 법을 배운 적은 없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비닐하우스을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고하고 나는 방글라데시의 안이 비어있는 온실을 사용할 생각보다 새로운 비닐하우스을 만들려고 설계도을 그렸다. 다카시내의 여러 온실을 둘러보고 나름 연구해서 말이다.
간단한 비가림 대을 만드는 데 필요한 대나무도 내 개인돈에서 샀다. 아마 KOICA 코디네이터가 있다면 작은 프로젝트 사업으로 사업계획서울 만들어 진행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