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CV 친구들 생각,홍차 한잔 마셔본다

방글라데시에서 일본협력대친구들과 한국인 식당도 가고 현지 맛집도 찾아..

by 박향선

방글라데시에 있을 때는 한국의 가족들에게 이것 저것을 보내 달라고 말을 못했다. 현지에서 필요한 곳을 다 구입해서 사용을 했다. 그러다보니 그 나라의 전통시장이나 큰 상가, 농산물 시장을 꿰뚫게 되고 koica 사무실에서 만들어준 면세카드로 면세점을 이용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으면 그 나라에 있는 한국식당을 찾기도 했다. 아리랑 식당이라고 그나라의 다카수도에 잘사는 동네인 굴산에 위치한 한국식당이었다. 난 한국음식이 먹고 싶으면 릭샤(세발 달린 자전거)나 베이비택시(세발달린 오토바이)을 타고 굴산의 한국식당에 가서 짬뽕을 시켜먹었다.

단원의 단체 회식일때는 방글라데시가 소고기만 먹는 회교국가이지만 우린 아리랑 식당에서 돼지고기삼겹살을 먹기도 했다. 내가 오기전에는 서울식당이라고 한국식당이 하나 더 생겼다.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여러명의 일본인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일본인 친구와 한국식당을 가기도 했다. 원예분야 일본인 친구는 집으로 초대하면 가끔씩은 방글라데시의 지방에서 근무하다 다카로 올라와 JOCV호스텔에서 묵고 있는 일본인 남자단원들을 여러명 데리고 음식을 해서 오곤 했다. 나는 시간이 되는 한국 KYV 봉사자인 친구나 후배들을 집으로 불렀다.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커다란 두개의 방이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처음에는 방을 하나 쓰다가 나중에는 다른 방도 썼다. 옆집에 일본인 협력대단원이 살았는데 그녀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대나무 의자을 줘서 빈방에 놓아두게 되었다.

빈방은 집에서 작은 파티을 하게되면 가운데 음식을 두고 모두들 바닥에 빙 둘러 앉아 음식을 먹었다. 지금은 잘 있는지? 곤도상이 생각난다. 향선짱 박상이라고 부르던 그녀.

내가 근무하던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타에도 찾아왔다, 박상하면서 ...원예센타 문을 지나면서 손을 흔들며 박상를 부른다.

난 그녀가 내 소속기관에 오면 점심을 먹으러 그 근처의 중국식당인 선샤인 으로 가곤 했다. 내가 돈이 없을 때는 방글라데시인 동료에게 이야기하면 돈을 빌려주었다. 아마 한국청년해외봉사단 중에 현지 방글라데시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면 빌려주었지 돈을 꾸는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내가 근무하는 기관에 가까이 근무하던 동료 단원이 우리 기관에 찾아오면 방글라데시의 유명한 수공예점 판매 전문매장인 아롱에 가서 듀트쫘와 푸딩을 먹곤 했다.

일본 JOCV인 곤도상은 나에게 방글라데시 현지인이 잘가는 외국인에게는 저렴한 방글라데시인들이 하는 맛집을 소개해주기도 했다.그녀와 릭샤을 타고 찾아간 식당은 한 켠에 손을 닦는 세면대도 있었다. 우리는 손을 닦고 손으로 카레을 먹었다. 가격은 50다카.

그녀는 잘 살고 있을까?내 집주변에 살던 리에 상은 어떻게 살 고 있을까? 가금씩 그녀의 집에도 가고 다른 일본인 사람들을 소개 받고 콩을 달게 조린 음식을 받아먹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젊은 시절 방글라데시라는 곳에서 일본인들과 우정을 쌓고 방글라데시에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방글라데시 맛집은 어딘지? 프로젝트을 기획해서 어떻게 일하는지 많이 배운것 같다.

무엇보다도 후배 한국해외봉사단이 파견되어 왔을때 후배 파견지역을 방문하자 그들이 우리을 위해 하모니언과 또불라을 연주하는 주연까지 베풀어주었던 꾸밀라 JOCV지역개발 팀.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의 부모님에게 부탁해서 한국식자재을 받았더라면 못하는 음식이지만 그들에게 맛난 한국음식을 대접했을것 같다. 내가 방글라데시을 떠난 후 그 다음해에 한국식자재을 파는 가게가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기는 했다.

내년이면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이 방글라데시에 파견된지 30주년이다. 나는 무엇을 했을까? 요사이 그릇을 닦다가 문뜩 커피숍에서 밀크티을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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