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의 이런저런 모습 보여준 시스터 리나를 생각하며

\올드다카의 고아원에서부터 다카 북쪽지역의 병원들을 방문하며

by 박향선

지금은 나이가 꽤 들었을 시스터 리나가 그립다. 방글라데시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에서 근무할 때 어느 날 그녀는 내게 왔다.


아사드게이트의 현관문을 지나 하얀 수녀복을 입고 왔다. 나에게 친구라고 부르며 왔다. 가끔씩 원예센터를 방문했다. 나중에는 구 다카에 한국인 수녀가 와 있다고 나와 함께 그녀를 만나러 릭샤를 타고 좁다란 길을 가기도 했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방글라데시에 생활 한지 일 년이 다될 무렵이었다. 내가 방글라데시에 무엇을 하러 왔는지? 왜 이러고 있는지? 무덤덤하던 시기다. 날씨는 덥기만 했다.


한국인수녀를 만나 이야기하는 가운데 그 나라는 회교국가라서 수녀들도 혼자서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녀들도 항상 둘이서 다닌다고 이야기했다. 난 엘리자베스수녀를 만나면서 그곳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그 수녀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 나라의 시원한 호텔의 커피숍도 찾는 것을 자제하고 나도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데 그 수녀는 나을 통해 한국인 사회에 연결되기를 원했다.


즉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인사회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을 연결 고리을 갖고 싶어 했다. 우리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은 그 당시 첫 파견기수라 이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이 분을 한국인들에게 소개를 해 주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 한국인 수녀는 다른 지역으로 사역을 떠나서 그 사역지인 통기라는 지역을 그 나라 휴일인 금요일 후배단원과 같이 방문하기도 했다.


시스터 리나는 나에게 한국인 수녀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나는 그 수녀가 기거하는 수녀원도 방문해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 수녀원에서는 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방글라데시의 법에 따라 엔지오에서 5년을 운영하고 정부에 운영권을 넘긴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임기가 끝나갈 무렵에 그녀는 나에게 여행을 제안해서 내 소속기관의 동료도 권유해서 방글라데시의 북부지역인 이탈리아 공동체 지역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공동체는 어느 이탈리아 수녀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학교도 세우고 직업훈련원도 세웠다고 한다. 그 할머니 수녀에게 인사를 갔는데 나에게 이탈리아 자기 집 주소을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것 같다.


그녀의 가족은 원래 방글라데시에 살았는데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면서 가족들은 인도로 떠나고 자신은 남아 가톨릭 수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수녀와 병원도 함께 방문했다. 그 당시 그 나라 병원은 의사가 처방전을 주면 병원밖의 허름한 약국들에서 약을 짓고 약을 가져가서 의사에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그 수녀는 가난한 환자들에게 약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그 수녀를 따라간 병원은 건물만 덩그러니 있는 건물들이라 건물 옆의 빈 공간에 정원을 꾸몄으면 하는 생각도 갖었다.


시스터 리나는 시슈하스피탈에도 데려갔다. 어린이 전문 병원이었다. 지금 대전에는 충남대병원에 소아전문 병동이 있다.


그 수녀는 한인사회에서의 지원을 간절히 원했는지 모른다. 나에게 이런저런 방글라데시의 사회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니 그녀는 방글라데시 어느 곳에 있을까?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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