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포장을 만들어 준 라흐만 샤헵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30년 전에 나는 한국청년해외봉사단 국내훈련으로 현장실습인 OJT을 받으러 한 일주일간을 수원 농촌진흥청을 방문했었다. 지금은 농촌진흥청이 전라북도 완주로 이사를 했다.
이때 나 혼자만 이 OJT에 참여한 것은 아니라 봉사단으로 파견이 되는 농업계통의 동기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 당시에는 농촌진흥청의 도서관에 열대농업 관련 도서자료도 거의 없었고 열대농업 관련기관도 전무했다.
나는 이 OJT 기간 동안 농촌진흥청 어느 기관에서 작물 씨앗을 얻었다.] 다수의 벼 품종, 콩, 참깨 등의 씨앗을 한 보따리 받아 안았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지푸르의 CERDI 기관장에 이야기하자 SEED certification center 관계자가 와서 그 관계자에게 가져간 작물의 씨앗을 소포장해서 주었다. 종자봉투에 적어진 이름과 특성등을 영어로 적어서 같이 건네었다
어느 날 CERDI의 기숙사에 일어나서 밖을 나가니 라흐만 CERDI 소장은 CERDI 연수원의 정원 한편에 이 여러 종의 콩들을 심고 종이에 이름을 적어서 푯말을 만들어 주셨다.
나중에 소속기관을 다카의 아사드게이트원예센터로 옮기다 보니 그 콩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기록을 못한 것이 안타깝다.
우리나라의 봉사단 사업이 정착되면서 외국인 연수교육에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의 파견소속기관의 카운터 파트너나 기관장을 초청해 주는 프로그램이 아쉽다고 우리 동기들은 간혹 이야기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내가 가져간 씨앗들이 방글라데시에서 어떻게 연구되고 재배되었었는지 농촌진흥청에 알렸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방글라데시의 작물 연구원들과 한국의 농촌진흥청 연구원들과 국제협력 연구모델이 설 수 있었을 터인데 하는 안타까움도 한편으로 든다.
소속기관을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로 옮기고 나는 씨앗을 그곳의 내 책상에 아래칸에 넣어두었다. 그곳에서는 원예 작물 묘목이나 씨앗을 파는 판매기관이다 보니 시범포장을 만들 상황이 아니었고 그들은 나을 봉사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러 왔다고 이야기했다.
결국에 나는 원예센터에 정년퇴직을 앞둔 연세 지긋한 직원에게 이 한국 벼 씨앗을 여러 봉투 건네주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봉사단이 파견이 되는 나라에 현지인들은 봉사단을 순수하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스파이로도 본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피드백이 무슨 일을 하든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20대 중반을 보낸 방글라데시에서 나는 한국과의 연결 고리을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