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 좋은 재봉사들은 천을 가져가면 디자인대로 멋진 살로와르 가미를 만들
몇 년 전에 내 코트를 살려고 어머니와 세이 백화점을 갔다가 돈이 부족해 못 사고 물론 사이즈도 문제였지만 동네 의상실을 찾아 코트를 맞추는데 얼마인지 물어보기도 했다.
우리가 중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에는 교복을 입었다. 겨울이 되면 그 위에 입을 남색 코트를 입었다. 그 당시에는 기성복이 안 나와서 동네 의상실에서 팔길이, 목길이등을 재어서 코트를 맞춰서 입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좋은 옷감으로 코트를 맞추어 주셨다.
내가 코트를 입은 것은 국민학생 때다. 외갓집에 을 갔는데 이모부가 녹색 코트를 맞춰주셨다. 그 당시에 이모부가 양복점을 하고 계셨다.
방글라데시에 봉사단으로 파견되어서 그 나라 전통복인 살로와르와 가미를 입으면서 비싼 가게에서 옷을 사기는 부담이 가고 전통시장에서 옷을 사기에는 마음에 안 들어서 옷을 맞춰서 입었다.
그 나라 전통시장에서 천을 한 야드를 사면 너비가 90cm 정도였는데 처음에는 옷을 종이에 디자인해 길이까지 정해주면 동네 재봉사가 그대로 만들어 주었다. 한데 옷감이 부족했는지 바지의 길이가 짧아졌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옷의 길이가 복숭아 뼈을 덮어야 한다고 한다. 한데 처음에 맞춘 옷은 옷감이 부족해서 복숭아뼈 15cm 위에서 바지가 멈추었었고 나는 그 위에 은 발찌을 하고 다녔다.
한데 방글라데시에서 은 은발찌을 양쪽으로 해야 하는데 한쪽만 하는 것은 과부라는 뜻이다.
그때는 그 걸 몰랐다. 왼쪽발목을 기브스을 해서 기분이 우울해서 그곳의 수공예전문매장에서 은발찌가 하나 있어서 샀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한참은 사람들이 발찌을 하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는데 깜짝 놀라서 발찌는 한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양쪽 다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솜씨가 좋아서 천을 가져가서 길이을 다 정해주면 살로와르와 가미를 참 이쁘게 만들어주었다.
그 당시 방글라데시에는 봉제, 천, 옷을 만드는 한국회사들이 많다고 했다. 한국수녀가 있는 곳에 어떤 한국분이 천을 기증해 주셨었다. 우리 집에는 도톰한 커튼이 없었다.
방글라데시에서 도톰한 천을 보고 무엇에 사용하는 천인지 몰랐는데 그 천은 유럽 등지로 수출이 된다고 카운터 파트너가 이야기했다. 카운터 파트너 남편은 가먼트회사에 다니는 사람으로 독일계 방글라데시 사람이었다. 딸아이는 백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방글라데시에 가서 그 나라 직물 파는 전통시장에서 천을 사서 커튼도 만들어서 집에 달고 천을 사서 옷을 맞춰 입기도 했다. 돈의 값어치가 있는 개발 도상국에 가다 보니 내가 디자인한 옷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색다른 나만의 옷을 맞춰 입으면서 창의력도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방글라데시에서 책상도 디자인해보고 옷도 디자인해 보고 구두도 디자인해서 맞춰서 신는 행운의 시간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