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게을 방문해 한국으로 전화을 하던 그 아릿한 향수
1993년에 방글라데시에 파견이 되어서 방글라데시에 다카수도에서 한국 대전으로 전화를 가끔씩 걸었다.
그 당시 방글라데시에는 공중전화가 없었다. 아니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방글라데시 수도인 다카에는 전화가 그려진 텔레폰 도깐(전화가게)이란 곳이 있었다.
도로에 가까이 있는 조그마한 가게에 다이얼식 전화를 한대 두고 고객들에게 분단위로 전화요금을 받았다. 나는 방글라데시 다카의 인디라 로드 근처에 살았는데 근처의 텔레폰 도깐에서 한국의 대전에 부모님이 사시는 집으로 전화를 자주 했었다.
인디라로드 앞에는 그 나라의 국회의사당인 셩셔드 버번이 있었다. 아침이나 저녁에 산책을 했었는데 보랏빛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에는 향수병 걸린 몰골로 텔레폰 도깐을 찾기도 했다.
한 달 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블로그로 만들 생각을 하면서 KOICA에 전화를 걸었다. 블로그에 글과 같이 올릴 사진을 생각하다 보니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있을 당시 좋은 사진은 보고서에 부착해 제출한 생각이 났다.
집에도 그 당시 사진이 있지만 좋은 것들이 아니었고 사진필름은 있지만 상태가 좋은 것 같지는 않다. 한번 사진관에 가서 인화가 가능한지 알아봐야 한다.
지난 설날 전에 KOICA 담당부서에서는 1993년부터 95년까지 보고서는 없으며 코이카에 제출된 보고서는 10년만 보관을 하니 정 알고 싶으면 방글라데시 사무소로 연락을 하라는 것이다. 설날 전이라서인지 코이카 방글라데시 사무소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가 이 이야기를 KOVA 사이트에 올리며 단원들이 하던 생각이 났다. 우리가 3개월에 한 번씩 KOICA본부에 보내는 보고서울 본부에서는 보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방글라데시 텔레폰 도깐들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영상통화가 되는 공중전화가 아니 핸드폰이 다카에도 넘치지 않을까? 생각에 잠긴다. 그 나라 오후 시간에 5~6시 사이에 한국에 전화를 많이 걸었다.
어머니는 오후시간에 7시경에 집주인집으로 전화를 걸으셔서 주인집에서 전화를 받으라고 종종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 나라는 전화가 귀한 나라였다. 단원들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나는 아사드게이트 전화를 많이 사용했다. 현지 카운터 파트너는 나에게 전화세이야기도 못하고 답답했겠다.
내가 국장으로 있다 보니 단원들에게 모임공지등을 알리기 위해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 사무실 전화를 이용하기도 하고 코디네이터로부터 연락을 받으면 다른 단원들에게 릭샤나 팀퓨을 타고 가서 연락을 하곤 했다.
그때는 정말이지 힘이 들면 산책을 하거나 바타쉬 (바람)을느끼며 릭샤를 타고 소나르가온 호텔에 가서 차을 한잔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며 전화 도깐(가게) 방문할 때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여름에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에서 땀이 주르르 흐르고 겨울에는 습한 날씨에 영하로는 안 내려가지만 체감온도는 영하라 간혹 얼어 죽는 사람도 있다고 신문에는 보도가 된다.
텔레폰 도깐을 방문하는 순간에는 더위도 추위도 모두 사라지고 고향의 따스한 입김이 느껴지는 시간을 갖었었다. 단 몇 분의 통화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