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에서 이태리, 인도네시아, 태국, 중식당 섭렵

그때 맛순례를 했다면 현지인을 더 잘 이해했을 터인데

by 박향선

방글라데시에 가서 한 가지 추억에 남은 것은 여러 나라의 음식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분명히 나는 외교부산하 국제협력단에서 파견하는 한국청년해외봉사단원으로 방글라데시에 1993년에 파견이 되었다.


경기도 이천 유네스코 수련원에서 진행되었던 교육 중에 그곳의 수련원으로 교육을 온 다른 프로그램의 회원들로부터 국내에도 봉사할 것이 많은데 왜 외국까지 가서 봉사활동을 하냐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에 봉사활동을 갔지만 난 대접을 잘 받고 온 느낌이다. 항상 손님이었다. 그래서 UNV로 나가기 전에 망설였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해 우리는 주재 대사관도 방문하고 그 나라의 좋은 음식점에서 환영도 받았다.


그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손으로 쇼부지카레(채소카레), 무르기 망쇼카레(소고기 카레), 루이마쉬카레(생선카레)에 채소샐러드을 먹고 달밥을 먹었다. 물론 루띠도 먹었다. 평소에는...


평상시에 집에서는 밥을 해먹기도 하고 양배추물김치을 담아먹고 영국문화원에 다닐 때는 집에서 감자두개을 삶아서 기름에 튀겨서 먹었다.


봉사단 교육을 받을 때 일주일에 한 번은 외식을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선배 봉사단원이 영양실조에 걸려 쓰려졌었다는 것이다.


단원들이 모일 때는 한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인도네시아 식당, 태국식당, 중국식당, 일본식당, 이태리식당, 호텔뷔페를 먹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식당은 그 나라의 잘 사는 동네인 굴산가까이에 있었는데 7층인가 8층인가에 위치해 다카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다본 다카시내는 공원이 많았다. 양념치킨을 좋아했던 나는 그때 먹은 음식에서 튀긴 치킨이 생각난다. 땅콩이 들어간 꿀에 기름에 튀긴 닭을 찍어먹는 것이었다. 그 후 한국에 들어와 맛이란 월간지 창간 작업을 하면서 인도네시아 대사관에 일하던 친구의 추천으로 이태원에 인도네시아 식당을 방문해 볶음밥을 먹어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태국씨푸드 식당은 한국대사관 참사관님이 봉사단단원들을 초대해서 가보게 되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고급식당에 속한다고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참사관님은 와인을 집에서 차갑게 준비해서 가져오셔서 서브를 해 주셨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와인은 차게 해서 마셔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분은 예술에도 조예가 깊으신 분이셨다.


일본식당은 JICA의 초대로 깔끔한 인테리어의 일식당으로 가보았다. 난 일식당은 처음이었다. 몇 명의 일본협력대요원들도 자리을 함께 했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환영하는 자리였다. 음식은 깔끔했다.


방글라데시의 정부에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환영하는 만찬을 마련해 주었는데 중식당에 널따란 정원도 있었다. 나는 그 당시 한국에서 정원이 있는 중식당을 가보지 못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여러 중식당을 섭렵하게 되었다. 일본인친구나 단원들이 찾아오면 아사드게이트 옆에 선샤인 중식당을 찾기도 했다. 한데 방글라데시에서 가본 중식당은 약간 어두웠다. 하지만 굴산에 낀뚜끼는 환했다. 방글라데시 중식당에서는 프랜치 오니언수프나 머시룸 수프, 프라이드 누들들 한국중식당에서는 안 파는 메뉴들이 있다. 한국중식당에서는 짜장면, 짬뽕, 누룽지해물탕이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태리식당에는 단원들과 같이 자주 찾던 식당이다. 다른 단원들과 함께 방문해 스테이크도 먹고 토마토 스파게티, 소고기스파게티를 먹곤 했다.


가끔씩은 호텔뷔페도 갔다. 하지만 봉사단모임은 대부분 한국식당에서 이루어진다.


그 당시 방글라데시의 대사관에서는 한국청년해외봉사단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추석 때면 대사관저에서 벌어지는 야외 파티에 초대를 해주시고 명절 때 인가는 대사께서 대사관저로 초대해 봉사단원들에게 농협포장의 귀하디 귀한 한국산고추가루 한 봉지씩 나눠주셨다. 방글라데시는 아열대라 고추가 작고 맵다. 열대고추는 탄수화물이 섞이지 않아 달지가 않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우리 단원들은 식사를 하다가 방글라데시 다카이 맛집을 순례하자던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나는 혼자서 반대했다. 그 돈이면 아이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터인데 하고.


지금은 내가 틀리고 그 친구가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앱을 키워보니 집 밖에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가 더 부드러워지고 음식을 먹는 법을 배우고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때 적극적으로 찬성해서 다카 맛순례를 했다면 현지인 식당에서부터 갖가지 음식을 맛보면서 그 나라 사람들을 더 잘 이해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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