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야니, 폴라우, 키츄리, 미스티 등 다양한 쌀음식

방글라데시는 쌀로 종류가 다양하고 향기가 나는 쌀도 생산

by 박향선

오늘날의 쌀의 원산지는 인도의 아샘지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포니카 라이스로 찰기가 있는 밥을 할 수가 있다. 쌀을 씻어서 물을 버리지 않고 끓여서 물이 조를 때까지 불위에서 끓인다. 적당히 끓여야지 더 끓이면 밥이 탄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쌀이 기다란 인디카 라이스로 찰기가 없다. 밥을 할 때도 물을 넣고 끓이다가 물을 버리고 다시 불위에서 밥을 한다. 더운 아열대의 나라여서 인지 밥이 찰기가 있다 보면 탄수화물의 당분이 많아 쉽게 쉬게 되니 밥물이 끓으면 밥물을 버리고 부슬부슬한 밥을 해서 먹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이 밥을 먹으면서 콩을 삶은 청국장 같은 달이라는 음식을 밥과 함께 카레와 같이 오른손의 손가락으로 뭉쳐서 밥을 먹는다.



현지 식당에 가면 손을 닦은 세면대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지금은 방글라데시가 어떻게 변했을까? 4월 5월경에는 트럭에 포장하지 않고 쌀 자체를 싣고 다니면서 쌀 자체를 1 kg에 11 다카에 담아 팔기도 했다. 구휼미였다.



1990년대 당시에 방글라데시에는 학교에 안 다니는 여자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가면 쌀을 주는 유니세프 미나프로젝트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쌀로 볶음밥이나 죽을 하듯이 방글라데시에도 쌀로 다양한 종류의 밥을 한다.



평상시에는 인디카 라이스로 밥을 해 다양한 카레, 달과 함께 밥을 먹지만 결혼식이나 각종행사에서는 비리야니나 폴라우, 키츄리 같은 밥을 먹는다.



방글라데시 가지푸르 CERDI 연수원의 기숙사에는 연수원장과 우리 한국청년해외봉사단원이 같이 기숙사을 사용했다, 한 호실씩. 저녁을 항상 같이 했다. 그 원장님은 인디카 라이스로 밥을 해서 달걀을 넣어 볶은 듯한 키츄리를 만들어와서 우리와 같이 밥을 먹었다. 우리는 오이을 잘라서 고추장과 같이 가져가서 오이을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그분은 그 고추장 맛에 푹 빠지셨다.



한 번은 가지푸르 근처에 학교 입학식에 초대받아 함께 행사장에 갔다. 그곳에서 폴라우라고 인디카 라이스에 주황색 카레와 함께 볶아서 건포도와 향신료를 넣은 푸슬푸슬한 밥을 먹었다. 약간 단 듯하면서도 맛이 있었다. 결혼식에 가서도 이와 비슷한 밥을 먹었다.



방글라데시 현지 식당에 가면 네모난 종이 박스에 인디카 라이스을 튀긴 양파 등을 넣고 그 안에 닭다리가 하나 들어있는 비리야니를 판다. 참 맛있다. 한 번은 내가 큰 실수를 했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 호스텔에서 키우던 개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데려와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에 데려다 놓았다. 호스텔이 문을 닫아서 말이다. 개 밥을 준비하지 못한 어느 날 현지 식당에서 비리아니을 사다가 원예센터의 말릭들이 있는데 이 개에게 주었다. 현지인들은 나을 마음속으로 비난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미쳐 생각을 못했다.



그 당시 현지인들은 월급으로 가정을 꾸리기 힘들다 했다. 월급이 나온 그때만 밥을 먹고 그다음부터는 부리을 먹는다고 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넓게 편 곳에 야채와 커레을 넣고 잘 접어 기름에 튀겨낸 것이 부리다.



방글라데시 다카의 인디라 로드에 살 때 내가 아픈 적이 있다. 옆집에서 음식을 해서 가져와 너무 고마웠다. 아주 더운 어느 날은 짜끄마 종족인 푸드윙 국장의 며느리가 세마이라는 국수를 가져왔다. 우유에 국수가 들어간 것이다. 더운 날씨에 국수를 우유에 말아서 먹는데 달짝지근하면서 맛이 있었다. 어느 날은 자색의 색깔의 찰기가 있는 쌀로 밥을 해와 놀라기도 했었다. 자신들이 살던 랑가마티에는 이와 같은 쌀을 생산한다고 이야기했다.



다카 지역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꾸밀라라는 지역이 있다. 그곳에 일 때문에 출장을 갔다 오다가 그 지역의 명물인 우리나라의 팥죽이라고 할까? 요구르트 안에 쌀로 만든 새알이 들어간 더이을 사 가지고 와서 옆집에도 선물로 드리곤 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쌀가루로 과자를 만들어 튀겨 설탕물에 재워둔 다양한 모양의 미스트가 흔한 간식거리다.



방글라데시는 다양한 쌀이 생산된다고 했다. 가장 고급으로 치는 쌀에서는 향기가 난다고 했다. 나는 인디라로드의 작은 샵에서 그 쌀을 1KG에 21 타카를 사서 집에서 밥을 해 먹곤 했다. 자포니카 라이스을 살려면 다카의 잘 사는 동네인 굴샨 마켙에 가서 사야 했다. 한국쌀과 비슷한 쌀을 그곳에서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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