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들 팔뚝에는 검은색실에 코란장신구을 달고 다녀
방글라데시에서 흔하게 보는 풍경으로는 아이들이 코에 작은 코걸이를 하거나 귀걸이를 하는 것이다.
있는 집 아이가 아니더라도 금으로 아주 작게 코걸이를 한다. 대다수는 은으로 코걸이를 하는데 여름에는 농이 생기기도 한다. 아주 작은 10살도 안된 아이들이 윗옷도 안 입은 상태에서 금이나 은으로 코걸이를 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아사드 게이트 원예센터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또 하나 눈에 띄는 일이 있다면 남자들이 은반지을 많이 하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은반지에 다양한 보석 알을 박아서 하고 다닌다. 여자들도 은반지을 많이 하고 다닌다. 하지만 멋스러움은 한국의 칠보반지만큼은 아닌듯했다.
어느 정도 자란 남정네들은 팔뚝에 검은색 띠에 은으로 만든 코란 성서모양의 조그마한 장식품을 달고 다닌다. 사무직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와이셔츠를 입어서 잘 모르지만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시장에서 일하는 일꾼들, 릭샤왈라등은 이 장식품을 하고 다녔다.
부유한 사람들은 금 반지을 한다. 결혼할 때 신부는 금팔찌와 목걸이 등으로 치장을 한다. 하지만 일반 생활에서는 여자들은 목걸이와 더불어 은 팔찌를 하거나 간혹 젊은 여인들은 은발찌나 발가락에도 발가락지을 한다.
전문수공예품가게에서는 은으로 만들어진 허리 띠을 팔기도 한다. 그 당시에 방글라데시 다카에서는 귀금속을 전문으로 하는 샵은 많지 않았지만 수공예품가게에서 악세사리을 팔면서 은 발찌, 은 귀걸이, 보석등이 박힌 은반지을 많이 팔았다.
장신구을 파는 가게에서는 진주 목걸이를 흔하게 팔린다. 쌀진주라고 해서 우리나라 밥풀떼기 같은 진주로 몇 겹으로 만들어진 진주을 팔기도 하고 분홍진주알로 만들어진 진주 목걸이를 팔찌와 함께 팔기도 한다.;
한국으로 귀국을 앞두고 나는 어머니와 어린 올케들과 여동생을 위해 진주 목걸이를 선물로 준비하고 아버지를 위해 타이거 눈이라는 방글라데시에서는 흔한 보석을 사가지고 와서 아버지 금반지를 맞춰드리고 어머니에게는 진주 반지을 해 드렸다.
IMF을 거치면서 어느 사인가 우리 주변에는 반지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사라졌다. 여인네들도 금반지 낀 손들이 흔하지 않고 은칠보 반지을 낀 여인네의 손, 은반지라도 낀 남정네의 손은 더더군다나 실종되었다.
어머니가 은목걸이를 나에게 주었다. 남동생이 하고 다니던 것인데 엄마가 하다가 나에 준 것으로 디자인이 너무 투박해서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를 떠날 무렵 센터의 오피서들과 말릭들은 나에게 얇은 박피의 귀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그 귀걸이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 보니 은발찌도 어디론가 가고 없다.
애아빠가 건네주었던 자수정 팔찌와 반지을 부산 모라동 아파트에서 시내버스에 요금통에 넣고 한 동안 무료로 버스를 타고 부산서면 부전시장에서 내려 글로벌경영전문학교 국제무역사과정을 수강하러 다니던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