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사이 가죽끈을 걸리게 한 졸리

한국귀국 길에 가죽신발을 맞추고 바타 단화도 사서 한국에 왔는데....

by 박향선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귀국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가죽구두를 방글라데시 다카 굴샨에 가서 맞췄다. 굽이 있는 신발이 아니라 굽대신 밑창을 뒤쪽은 높게 하고 구두 앞쪽은 얕게 해서 신발을 디자인했다.



중학교 교복 구두 스타일로 앞에는 가죽끈으로 고정하게 하고 말이다. 샌들을 맞출 수도 있었지만 앞발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남청색 가죽으로 구두를 만들었다. 같은 단원이었던 친구도 가죽신발을 나와 똑같이 맞추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이 구두를 신다가 문제가 생겼다. 구두 밑창이 자꾸 떨어지는 것이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본드를 부착해서 신어도 자꾸 밑창이 벌어졌다.



나는 한국이 신발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에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귀국을 준비하면서 방글라데시에서 유명한 신발인 bata. 에서 생산된 랜드로바도 사가지고 왔었다. 앞이 약간 기다란 얍상한 신발이었다.



난 한국에서 방글라데시로 나가기 전에 서울 남대문시장에 위치한 새로나 백화점에서 상설전시장을 찾아 랜드로바를 샀었다. 방글라데시에 갈 때는 동생이 준 신발과 함께 가져갔는데 검정구두는 방글라데시에 도착해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 단복을 입을 때 신고 현지에서는 졸리을 사서 신었다.



방글라데시의 신발가게에서는 다양하고 화려한 여성신발이 졸리을 팔았었다. 엄지발가락에 끼어서 신는 졸리를 나는 자주 신었다. 현지인 옷인 살로와 르와 가미, 사리을 입을 때에 졸리을 신고 다녔다.



졸리는 가죽으로 만든 신발도 있고 다양한 천으로 만들어진 졸리도 있었다. 고무로 만들어진 졸리도 신발가게에서 팔았다.



한국에서 방글라데시로 갈 때는 신발도 걱정했다. 그곳에서는 어떤 신발을 신을지 신발은 있는지 걱정이 되었었다.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방글라데시는 가죽가공업이 발달한 나라다.



우리나라의 신발가게의 신발들은 그때 당시 방글라데시 신발만큼 화려하지도 않았고 천을 많이 사용하지도 않았다.



방글라데시의 신발가게는 지금 어떤 졸리 신발이 유행할까? 한국으로 귀국길에 방글라데시의 화려한 졸리 신발 한 켤레를 가지고 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부탄에서는 신발을 별로 걱정하지 않고 가서 큰 코을 다치고 그곳에서 이태리 가죽 단화를 아주 싸게 사고 운동화도 그곳에서 샀었다. 신발 생산공장이 없던 부탄은 신발을 인도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생활을 생각하고 그곳에 가면 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신발을 여러 켤레 준비하지 않고 갔었다. 부탄에서 산 가죽단화는 그곳에는 세금제도가 발달이 안되어서 세금이 별로 붙지 않아서 이태리 신발을 아주 싸게 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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