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가 어떤 곳일까?

채소 육묘와 씨앗, 과수 묘목 판매, 원예작물 병충해 상담과 치료

by 박향선

방글라데시의 다카시내 셩셔드 버번(국회의사당) 길 건너편에 위치한 원예센터는 채소육묘와 씨앗, 과일 묘목 판매하는 곳이었다. 원예센타라고는 하지만 농업성보다 다카시청의 관리를 받는다고 했다. 센터 내에는 넓디넓은 채소 육묘장이 있었고 한쪽에는 과수나무의 묘목들이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큰 원예센터로 전국각지에서 과수나무의 묘목이 트럭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임지 배정지에 이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방글라데시 현지 적응 훈련 시에 농업성(MOA)을 방문했다. 농업성 수장은 내가 사 년제 대학을 나왔다고 하니 가지푸르의 농업연수기관인 CERDI로 임지를 바꾸었었다.


이 사디는 일본 JICA의 지원으로 지어진 농업 연수기관이었다. 나와 친구는 사디에 부임하여 기숙 사을 배정받았다. 그곳은 정말 조용한 곳이었다. 석양이 질 무렵이면 기도소리를 알리는 아잔이 스피커를 통해 들리고 들녘에는 소들이 어그적 거리며 걷고 이른 아침이면 더운 바람 속에서도 가끔씩 바람이 불어 아! 이곳이 아열대 지방임을 실감케 했다.


이곳에는 농업연수기관인 CERDI 옆에 SEED SERTIFICATION INSTITUTION이 있어 내가 한국에서 가져간 채소씨와 콩, 벼씨앗을 건네주었었다.


사디의 대표되는 라흐만 샤헵은 내가 건네준 콩을 심어 이름 표을 달아 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우리들을 위해 원예산업에 대한 브리핑 교육을 며칠동안 해주시고 그 나라 농업 관리자 교육에 동참하게 해 주었다.

우리에게는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딸린 커다란 사무실도 마련해 주고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해 주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첫 임지배정지인 아사드게이트로 갈 것 만을 생각했다. 아마 내가 사디에서 생활했더라면 조용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봉사자로 왔다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아사드게이트의 사무실에서 근무는 조용하면서도 다이내믹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었다. 복시 시을 달라고 오는 사람부터 월드뱅크 등퇴직 공무원, 군인, NGO프로젝터 관계인, 부녀자, 농부, 학생, 국회의원, 수녀, 이맘 그야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아사드게이트 원예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 그들과 만나며 원예상담에서 시작해 한국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었다. 아니 한국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뱅갈리들은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나는 한국 어을 가르치기도 했다.


처음에 임지에 배정이 되어서는 방글라데시 아이들이 보는 책을 사러 뱅갈어 공부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한국어-영어-뱅갈리어로 농업 관련용어 정리를 해서 내가 완성하지 못한 농업 관련용어노트를 6기 후배에게 건네주고 왔다.


나이가 들어 추억을 소환해 보니 원예상담일지를 만들어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내가 방문했던 지역, 이름, 상담한 원예작물, 문제점, 상담 내용들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으면 후배들이 임지에 파견되어 많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아사드게이트에서 원예상담을 하면서 얼마나 잘했을까? 나는 아열대 작물 공부를 혼자서 했다. 농업성에 가서 책을 빌려서 읽고 영국문화원에 가서 원예작물 책을 읽었다. 영국문화의 기록문화에 감탄하면서 말이다. 내가 방글라데시 파견되기 전에 수원 농촌진흥청에 도서관을 찾았을 때 아열대 작물에 관한 책을 찾지 못했었다.


코코넛이 잘 안 될 때는 소금을 뿌려준다던가 병충해 방지 유기농 약은 담배, 비눗방울, 마늘, 석유방울 등을 섞어서 만든다든지 여러 가지를 책에서 배웠다. 망고나무 과수원 안에 구아버는 잡초 하는 정의에 웃기도 했다.

내가 감기에 걸려 콜록콜록거리면 나의 동료는 비타민 C가 풍부한 구아버를 먹을 것을 권유해 구아버를 먹었다. 나는 구아버 맛에 빠져 구아버를 사서 먹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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