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포카라 간다면 방글라 다카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부탄경유해 가고 싶어
내가 네팔의 포카라에서 푼힐로 트레킹을 다녀온 지도 약 30년이 다되어 간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산을 별로 가지을 못했다.
부탄을 다녀오고서는 매주마다 대학동창인 친구를 계룡산 근처의 커피숍에서 자주 만나며 계룡산의 경치을 즐기었다. 물론 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부산에서 애 아빠와 백양산 뒷길로 사상도서관을 다니고 근처의 절에 가서 약수를 마셨다.
아이가 크고 아이와 함께 등산을 하고 싶어졌다. 대전 태평동에서 103번을 타고 계룡산 산줄기인 수통골을 찾았다. 한참을 올라가니 물이 가물었는지 얕은 계곡물이 고여 있었다.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딸이 늘뫼기 뱀을 보고 놀래서 그다음에는 산을 가지을 못했다.
딸에게 평지인 방글라데시에서 산악지대인 네팔 포카라로 트레킹 여행을 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8월 말에는 우기라서 히말라야 산악지대을 트레킹 하는 데는 안 좋은 시기였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계약기간이 2년을 끝내고 6기 후배들의 방글라데시 현지 훈련을 도와주고 여행을 떠났다. 혼자서...
네팔에 한국청년해외봉사단 호스텔을 찾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네팔의 카트만두공항에서 포카라 가는 비행기을 탔다. 비행기는 원래 예정된 도착 시간을 한시간이상 기다려 탈 수 있었다. 공항에서 비행기을 기다리는데 한 백인 남성이 눈에 띄었다.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었다.
비행기을 타고 포카라에 도착하고 트레킹 여행에 관해 허가증을 받는 오피스에서 그 백인 남성을 만났다. 나에게 트레킹 허가증을 받는 용지를 작성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네시에 다시 보자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사무실을 그 백인 남자와 나오는데 밖에 서 있던 네팔리들이 하는 이야기가 다 들렸다. 그들은 오늘 밤 같이 잘 것이라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방글라데시말과 네팔리 말은 비슷해서 말뜻을 대충 파악하게 되어 나도 놀랬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날 약속에 나가지 않았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의사부인이 부탁한 생선아이스박스를 포카라의 한국인 식당에 가져갔다. 포카라 한국식당은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여행사을 겸해서 나는 그곳에서 푼힐 트레킹을 할 셀파도 구하고 여행경비도 지급했다. 돈이 넉넉하지 않아 좀 조심스러웠다. 트레킹여행 장비을 빌려주는 곳에서 여행 장비을 빌리기도 했다.
트레킹을 그 한국인 식당 여주인과 같이 하게 되었다.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 내가 고용한 셀파는 그 여주인만 캐어를 해서 나는 트레킹하는 동안에 만난 말레이시아 화교, 미국인,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셀파가 일일 고용비가 너무 비싸단다. 그리고 트레킹 할 때 셀파는 젊은이들을 많이 고용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미국인인가 호주사람은 10대 초반의 아이를 셀파로 고용하고 있었다.
같이 걸으며 산을 오른 말레이지안 화교는 말레이시아의 화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말레이시아 화교는 말레이시아에서 경제 활동만 한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나 트레킹을 하면서 한국라면도 먹을 수 있었서 좋았던 것 같다. 여행사에서 스키 스틱을 주었는데 산을 오르면서 유용하게 사용하다가 발목을 다쳐 서서 산을 내려가는 포르투갈 여자에게 네가 사용하던 스키스틱을 주었다.
그때는 그 여자의 여행일행을 몰지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같이 산을 오르다가 다친 사람을 버려두고 가다니 하면서....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들은 그들의 휴가을 망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친 여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폐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혼자서 하산을 결정한 것이라는 것을...
산을 오르는데 잘 정돈된 돌계단을 오르는데 어떤 네팔리 여인이 서 있었다. 아래를 보니 4~5살 정도 된 꼬마 아이가 혼자서 낑낑대며 돌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마 엄마가 내려가서 아이를 업거나 손을 잡고 같이 올라갔을 것이다.
그 네팔리 여인은 꼬마를 기다렸고 그 꼬마가 엄마옆으로 올라오자 그 여인은 그 꼬마와 함께 다시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잘 타는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히말라야 산은 어둠이 빨리 내린다. 오후 2-3시가 되자 구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로지라고 불리는 숙소에서 밥도 먹고 빌린 침낭에 몸을 넣고 잔 후 새벽 4시에 부시시한 모습으로 일어나 푼힐에 올랐다. 세상에 나 혼자 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푼힐까지 오르면서 이틀에 걸려서 오르고 하루에 내려왔다. 산을 오를 때는 중간중간의 마을 찻집에서 차 한잔을 마시며 쉬면서 오르고 푼힐을 내려올"때는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속도가 빨랐는지 같이 간 식당 여주인은 중간에 쉬겠다고 했다. 나는 그러면 하루 경비를 더 내야 해서 그것은 무리고 혼자서 라도 내려간다고 했다.
여행사에서 원래 세운 여행 일정대로 하겠다고 했다. 같이 산을 올랐던 한국식당 여주인은 더 이상 못 내려가겠다고 셀파와 중간에서 멈추고 나는 혼자서 산을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포카라까지 왔다.
포카라에서는 강 한가운데 서 있는 네팔 호텔에서 네팔의 문화 콘서트로 진행된 노래도 듣고 민속춤도 보고 포카라의 자연경관과 티베트 캠프, 쌍무지개 뜨는 폭포등을 시내 일주 여행도 했다. 그때는 홍콩 화교들과 함께 포카라 시내 일주를 했다. 홍콩에서는 공부를 잘하면 홍콩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그러지 않으면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를 갈 때는 하루종일 버스를 타고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를 왔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를 갈 때는 생선아이스박스 때문이기도 하고 초행길이라 편한 여행 편으로 비행 기을 탔지만 말이다.
내가 살아생전에 방글라데시를 간다면 다카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부탄 팀푸에 갔다가 고속버스로 네팔 카트만두로 갔다가 포카라까지 가고 싶다.
나이가 들었으니 바쁠 이유도 없고 여유롭게 산도 구경하고 강도 구경하고 사람도 구경하고 시장도 가보고 유적지도 돌아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포카라 트레킹 허가증을 주는 사무실 앞에서 오후 4시에 만나기로 한 사람에게는 너무 미안하다. 한국인과의 약속이 처음이었을 터인데.. 그 사람은 모델이라고 했고 자신은 포카라 여행이 여러 번이며 한 번 찾은 사람은 계속 찾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포카라의 한국식당 여주인을 만나면 그때 나의 호주머니 사정을 이야기해 주고 셀파를 고용했는데 너무 당신만 캐어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 원래 여행일정대로 행동해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때 산에서는 잘 내려왔는지?
나는 산에서 내려온 그다음 날 다리가 너무 아파서 마사지를 받으려고 포카라 마사지 샵에 갔다가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어두워서 들어가다가 다시 나왔다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