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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무서워 북한 unicef에 전화 걸지 못해

북한 어린이 돕지 못해 한국 돌아와 괴로워 해

by 박향선

오늘 TV 11시 밤 프로그램에 박지원 전 국정원원장이 나왔다. 좀 볼까 하는데 딸이 불러서 토크쇼을 못보고 딸에게 갔다.


1993년 한국국제협력단의 교육을 받고 방글라데시에 파견이 되어 농업성의 관리을 만날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에 그들은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물어보고 남한이라고 하면 자신들은 북한을 더 좋아 한다고 답을 하던 시절이다.


그리고 UNV로 부탄에 가서는 북한을 다녀온 그나라 퇴직 공무원을 만나 그 집에 초대되어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어서 그 때는 무서웠다. 한 술 더떠서 UNICEF 대표는 나보고 통역을 해 달라고 했다. 북한 UNICEF에서는 영어을 못알아들어서 나 보고 전화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에 나는 "NO"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북한의 꽃제비나 어린이 문제가 나올때면 나 혼자 괴로워 했다. 그때 내가 전화을 북한에 해서 부탄 유니세프 대표와 북한의 유니세프 대표가 이야기가 진전이 되었더라면....


내 아이을 키우면서 대전 유성온천역에서 세이브 더 칠드런에 가입을 했다. 어려운 시기였다. 회비을 오천원 낼까 하다가 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회원가입한지 십년이 넘어서 지난해는 예쁜 감사장을 받았다. 유엔아동기금인 유니세프에는 작년에 가입했다. 몇년 전에는 딸 이름으로 유엔난민기구에도 회원 가입을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국제협력단에 제안을 한다는 것이 세월을 벌써 25년이 다 되었다. 외국에 나가면 지역의 레스토랑에서 북한사람들과 마주치거나 북한 사투리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부탄을 다녀와서 동네 피시방에 가서 검색을 하다가 국가정보원을 검색해서 방글라데서 외교협정을 보게 되었다. 1998년인가 1999년이었는데 깜짝 놀랬다. 북한이 방글라데시와 외교협정을 남한보다 많이 맺고 있었다. 부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이명박 정부에서는 자원외교을 실패했다고 언론에서 그러는데 정말 실패 한 것일까? 고등학교때 우표을 수집했었다. 그때 당시에 제3세계국가 원수들이 한국을 많이 방문했다. 나이가 들어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다녀오면서 그 우표수집책을 넘기며 전두환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대학때 전두환을 국민 우둔화정책으로 3s정책을 펼친사람이라고 비난을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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