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렌즈 귀국단원들의 국내정착정책, 회원관리, 파견국가 관리 시급
최근에 페이스 북에서 한국청년해외봉사단 귀국단원들, 월드 프렌즈등이 제대로 국내에 정착을 못하고 저임금의 강사나 임시직으로 전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 국제연합봉사단을 다녀오고 대전에 둥지를 틀었다. 부모님도 계시고 조카들을 보면서 말이다. 물론 서울에서도 직장생활을 했었다.
봉사단을 다녀와서 무척 힘든 시기을 보냈다. 처음에는 이름이 있는 회사나 엔지오등에 이력서을 보냈다. 무역회사에도 이력서을 보냈다. 친구에게 취직부탁도 했었다. 농촌지도소인가 친구가 있는 농업 관련 정부기관은 대학원이라도 나와야 임시직이라도 들어갈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국제연합봉사단을 다녀오고 1년 육 개월이 지났을까? 서울 UNDP에서 연락이 왔다. 일자리를 주겠다고 나는 거절했다. 그 당시 나에겐 정장과 구두와 화장품이 없었다. 그때 어머니와 사이가 안 좋았다. 어머니는 유엔으로 나갔다 왔으면서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을 많이 하고 화을 많이 내신 관계로 나에게 정장과 구두와 화장품을 사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때였다. 대구의 친구를 추천했다.
IMF직후라 더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대전에서도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이 무엇인지? 국제연합봉사단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은 첫 기수는 는 한국유네스코협회에서 파견을 하고 이기부터는 국제협력단(KOICA)에서 파견을 하고 이름도 5기부터는 한국해외봉사단이라 부르다 지금은 월드프렌즈라고 불린다.
어떤 주간지 사장은 내가 해외봉사단을 나갔다 왔다고 하니 외국에 나가서도 봉사활동을 하는데 국내에서도 봉사활동을 해야 하지 않느냐? 자기네 회사에서 봉사활동을 해달라고 노골적으로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을 지원하면서 나는 봉사비가 나오는지 월마다 적립금이 쌓이는 줄도 몰랐다.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나가면 파견국사정에 따라 월 생활비가 93년 당시에 약 300달러가 나왔고 적립금은 2년 동안 적금식으로 들어가 계약 2년을 채우면 700만 원이 나왔다.
그러나 국내에서 나에게 국내에서도 봉사활동을 하고 자기 내 회사에서 봉사활동을 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은 잘 몰랐다. 나는 대전 여성신문이라는 회사에서도 처음에는 토요일마다 교통비만 받고 봉사활동을 하고 제세산업이라는 회사에서도 적은 비용을 받고 일을 했다.
일본의 JICA에서 파견되는 일본협력대인 JOCV의 경우는 파견국가에서 계약기간이 끝나면 국내에 돌아가 파견국가언어 시험을 본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지역의 기업들과 연계해 일본 JOCV귀국단원 모임에서 귀국일본협력대원들의 취업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영국의 봉사단인 VSO는 파견국가에서 귀국을 앞둔 VSO 단원들의 구직의사을 파악해 관리하는 것으로 안다.
대전충남 KOICA커뮤니티에 나가서 후배를 만났는데 방글라데시는 파견훈련기간도 줄어들고 93년 당시는 방글라글자를 먼저 모음과 자음등을 배우고 글자를 배우며 방글라를 배웠다. 후배들은 방글라 글라을 모르고 방글라 말만 배웠다고 한다.
한국은 한국청년해외봉사단에서 월드프렌즈로 이름의 명칭을 바뀌고 양적으로는 1만 명 이상의 봉사단원을 파견했지만 귀국단원모임의 지역모임체가 자생적으로 성장도 못하고 지역의 기업들과도 연계해 사업이 추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정부에서 외국으로 준외교관 여권으로 봉사단 파견사업을 일관성 있게 파견하면서 양적인 성장과 함께 질적으로 귀국단원들의 국내정착이 기업이나 엔지오 성장에도 세계의 지구촌 건설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